투자자 '재항고'로 늦어진 대우조선해양 채무 재조정
부채비율 대폭 줄이지 못해, 대형 선사 상대 수주 어려워
업체 "일감 줄면 고사할 판"

"납품단가가 최근 몇 년간 계속 깎여 정상가의 80% 수준입니다. 최근에는 납품대금 지급일도 예전보다 유동적입니다. 당연히 더 불안하죠. 더 걱정되는 건 모기업(대우조선해양) 채무조정이 더뎌져 정상 수주를 못 해 일감이 갈수록 줄어 우리 일감도 함께 준다는 겁니다. 공장 절반은 이미 멈췄는데, 지금보다 일감이 더 줄면 더는 버티기 어렵죠."

경남·부산에 공장을 두고 선박 기자재를 납품하는 한 협력사 대표는 절박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렇듯 1100여 개 사내외 협력사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신규 자금 2조 9000억 원 투입과 채무 재조정 상황만 바라보며 불안해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이렇게 경남·부산 지역경제와 직결돼 있다.

◇"대법원, 빨리 결정해달라" = 대우조선에서 매달 139개 사내 협력사에 나가는 기성비는 1000억∼1200억 원 정도다. 또한, 강재(철판) 값을 제외한 1000여 개 사외협력사 납품대금(인건비 성격의 사금과 기자재 납품비)은 매달 1000억∼1500억 원 규모다. 최대 2700억 원의 현금이 매달 1100여 개 사내외 협력사에 지급돼 이 돈이 지역경제에 풀린다.

하지만, 원활할 것으로 봤던 채무 재조정은 16억 원 규모의 회사채 보유 개인투자자 항고로 꼬여버렸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신규 자금 투입을 올 4월 말부터 할 예정이었지만 그 전제 조건으로 △대우조선 노사 자구노력 합의 △시중은행 채무 재조정 합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 투자자 채무 재조정 합의를 모두 충족시킬 것을 내세웠다.

대우조선은 지난 4월 17·18일 사채권자 집회를 열고 회사채 만기연장 등 채무조정안을 99%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창원지법 통영지원은 사흘 뒤인 4월 21일 채무조정안(5건)을 인가했지만 회사채 보유 투자자 1명이 절차상 하자 등을 이유로 법원 인가 5건 중 2건을 항고해 채무조정안 2건 효력이 정지됐다.

지난달 10일 부산고법은 사채권자집회 결정에 하자가 없다며 항고 기각을 결정했지만 이 투자자는 이에 불복해 지난달 24일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재항고 관련 결정은 제기일부터 빨라야 2∼3개월 뒤 나올 예정이어서 오는 8월 말까지 출자 전환 등 채무 재조정 일정이 늦춰지고, 부채 비율이 감소하지 않아 그만큼 주식 거래 재개도 지연된다. 현재 부채 비율로는 본격 수주 재개도 쉽지 않다.

다행히 지난 11일 산은과 수은이 사채권자 1인 재항고와 관계없이 조기 경영정상화를 위해 대법원 판결 이전 금융지원을 개시했다. 두 국책은행이 2000억 원의 신규 자금을 투입해 납품대금 미납 사태는 막았다.

경남의 한 협력사 대표는 "불행 중 다행으로 두 국책은행이 전향적으로 판단해 납품대금은 받았지만 불안감은 계속된다. 대법원이 1100여 개 협력사와 그 가족을 생각한다면 재항고 결정을 최대한 빨리 해줬으면 한다. 납품단가 인하로 지금도 겨우 숨만 붙이고 사는데 여기에 변수 한두 개만 생기면 도산할 기자재업체가 수두룩하다"며 빠른 결정을 재판부에 촉구했다.

◇"채무 재조정 전이라도 신규 자금의 원활한 투입을" = 대법원의 재항고 절차와 별도로 산은과 수은이 대우조선이 실제 정상 영업행위를 하도록 신규 자금 투입 속도와 규모를 높여달라는 요구도 있다. 두 국책은행이 자금 투입을 한다지만 아직은 너무 보수적이라는 지적이다. 기왕 신규 자금 투입을 결정한 상황에서 자금 투입 시기를 놓쳐 사내외 협력사가 줄도산하는 상황은 막자는 것이다.

대법원의 빠른 판결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정상 수주 재개 때문이다. 올 1분기 연결 재무제표 기준 대우조선 부채비율은 1557%로 수주 활동 때 재무제표를 요구하는 대형 국외 해운사로부터 수주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하루빨리 채무 재조정을 마무리해 부채비율이 240∼250% 수준으로 떨어져야 지금처럼 단골 개인 선주만이 아닌 대형 선사 대상 수주 경쟁을 할 수 있다.

대형 선박 기자재를 납품하는 경남의 한 협력사 관계자는 "납품대금 문제도 크고, 한편으로는 모기업 수주가 잘 안 돼 일감이 더 줄까 봐 그것도 큰 걱정이다. 우리 회사도 올해 들어 일감이 많이 줄었는데 하루빨리 정상 수주 경쟁을 벌여 일감을 더 따오는 게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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