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학살 다룬 다큐 〈해원〉 구자환 감독을 만나다
영화 <레드 툼>후속편, 전국 다니며 유족 만나
후반 작업 제작비 고심, 10월 마무리·내년 개봉

'해원(解寃)'. 원통한 마음을 풂. 영화 제목에 감독의 뜻이 응축됐다. 구자환(50) 감독이 지난 2015년 <레드 툼(Red Tomb)> 개봉에 이어, 올해 <해원>이라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해원>은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 영화로,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기까지 전국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 현장을 보여줄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촬영을 마친 감독은 가편집을 하고, 후반 작업을 진행 중이다. 내년 5월쯤 영화를 상영할 계획이다. 지난 12일 마무리 편집을 하느라 땀 흘리고 있던 구 감독을 창원 작업실에서 만났다.

-작업 과정이 고돼서 그런지 얼굴이 해쓱해 보인다.

"보통 다큐 감독이 가편집 마치면 제정신이 아니다. (웃음) 우울증 걸릴 정도다. 노래 흥얼거리다가도, 편집할 때는 반쯤 미쳐 있다. 운동 못한지도 6개월 됐다. 스트레스로 이가 계속 흔들린다."

영화 <해원>은 '원통한 마음을 풂'이란 뜻을 그대로 담았다. 구자환 감독은 후반 작업 중에도 울컥 눈물을 쏟을 때가 많다. /우귀화 기자

-영화 <해원>은 어떻게 해서 만들게 됐나?

"2015년에 <레드 툼> 개봉하면서, 관객과의 대화를 했다. 공동체 상영을 했는데, 후속편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계속됐다. 촬영비도 부족했고, 자신이 없었다. 해방 시점부터 한국전쟁기까지 전 지역에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무수히 많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역사교과서 국정화 결정이 나던 날, 폭발했다. '뚜껑이 열렸다'. 교과서에 없는 역사, 사람들이 잘 모르는 민간인 학살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살의 주체가 누구였는지 말하고 싶었다. 2015년 11월부터 기획해서 자료를 모았다."

-그러면 영화 <레드 툼>과 <해원>의 차이가 무엇인가?

"<레드 툼>이 경남 지역 국민보도연맹사건에 한정해서 다뤘다면, <해원>은 전국적으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다룬다. 경남을 포함해 전남, 전북, 충청, 경기, 강원 등 민간인 학살 사건이 벌어진 전국을 돌아다녔다."

-광범위해서 촬영, 제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 같다.

"촬영은 작년 2월에 시작해서 올해 5월에 마쳤다. 80회 정도 촬영했다. 다른 지역을 더 넣고 싶기도 했는데, 포기했다. 내 욕심보다 관객들에게 지겹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루는 일이 막막해 보인다.

"역사학자들이 민간인 학살 연구를 안 했으면 이 영화를 못 만들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한 결정문을 토대로 전체 사건을 훑어갔다. 역사, 시대적 상황 흐름과 관련한 책을 많이 찾아서 연구했다. 김동춘, 한홍구, 신기철 교수 등을 만났고, 현장에 가서 유족을 만났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정문을 토대로 전국을 다니며 유족을 찾았다. /스틸컷

-당시를 증언해 줄 분이 계셨나?

"<레드 툼>에 출연한 많은 분이 돌아가셨다. 생존한 분도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다. 이번 영화는 시간이 조금 더 흘렀으니 더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생생한 인터뷰는 힘들 것으로 생각했는데, 학살 사건 당시 10대였던 현재 80대 어르신들이 증언해 주셨다."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이었나?

"육체적으로 힘들게 촬영하고 정리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보조, 음악감독, 작가 등이 다 따로 있어야 하지만, 돈이 없어서 혼자 다 한다."

-제작비용은 어떻게 충당했나?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지원을 받고, SNS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 후원을 받았다. 지금까지 3300만 원가량이 소요됐다. 아직 후반 제작이 남았다. 색 보정, 오디오 믹싱, 내레이션 등을 해야 한다. 돈이 들어서 일부 음악을 빼기도 했다. 제작비 마련을 위해 이달까지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후원 계좌 농협 302-0896-4040-41)."

-이제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를 두 편이나 제작하게 됐다. 애초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분신 사건 때부터 기자로 카메라를 들게 됐다. 2004년 함안 여항리에서 (민간인 학살) 유골이 나왔다고 해서 취재 갔다가 눈이 뒤집혔다. 유족도 사회적으로 알려지고 치유돼야 이념문제도 극복된다고 생각한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왜 빨갱이냐. 지금도 여전히 학교에서 이런 사실을 안 가르쳐 준다.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다.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언제쯤 만날 수 있나?

"7월까지 영화를 마무리해서, 10월쯤 완성할 계획이다. 당장 상영을 못 한다. 영화가 만들어져도 개봉관을 못 잡으면 힘들다. 영화제에 출품해서 내년 5, 6월 정도에 개봉하고자 한다."

-영화가 관객을 만나기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보길 바라나?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서 제작하기가 더 두렵다. 모든 걸 감독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1편을 만드는 것도 힘들지만, 만들고 나서 더 힘들다. 정치색, 사회 비판적인 영화는 개봉이 더 어렵다. 기본적으로 장사가 안 된다. <레드 툼>은 1년 전 유튜브에 무료로 올렸다. 알리는 게 목적이어서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진짜 마지막이다 하면서 제작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감독 소리를 듣게 됐는데, 서랍장에 박힐 영화는 안 만든다는 게 내 신념이다. 나쁘지 않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영화를 만들면서도 계속 울컥하고 눈물이 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