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혁신, 눈이 반짝인다] (2) 양산 화제초등학교
외우고 받아쓰기서 '탈피'그리고 맛보며 단어 익혀
직접 만든 교과서로 수업...눈높이 맞춘 덕 효과 쑥쑥

"선생님, 시 적어도 돼요?"

등에 내리쬐는 따스한 햇빛, 빨갛게 익은 석류, 친구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시상이 절로 떠올랐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 수업 시간에 시를 적겠다고 자청했다. 흔치 않은 광경이다. 이날 양산 화제초교 1학년 수업 목표는 '석류' 단어 익히기다. 국어 시간은 미술 수업으로, 또 음악·사회 수업으로 경계를 넘나든다.

학교에서 1학년 한글 깨치기 수업은 대부분 외우고 받아쓰기 후 틀린 문항은 몇 번씩 적는 것을 반복한다. 반면, 화제초교 수업은 빨간 석류를 보고 맛보고 글을 익히는 과정이 아이들 표정만큼이나 아주 새콤하다.

◇아이들이 직접 만드는 교과서 = 화제초교는 양산시 원동면에 있는 시골학교다. 토끼반(유치부), 솔잎마을(1학년), 향기마을(2학년), 햇살마을(3학년), 새싹마을(4학년), 별빛마을(5학년), 떡잎마을(6학년) 등 유치부를 포함해 모두 7학급이 있다. 2000년대 초반 학생 수가 줄어 폐교 위기를 겪었고 지역민과 함께 '학교 살리기' 운동을 진행했다. 학생은 100명으로 늘었다. 지난 2015년 경남형 혁신학교 '행복학교'로 지정돼 올해로 3년째다. 교사도 학생도 행복한 수업 시작은 이해와 배려였다.

화제초 1학년 아이들이 골목에 앉아 담장 너머 석류를 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혜영 기자

화제초교 김진희(48) 1학년 담임은 교과서를 직접 만들어 아이들과 수업을 통해 완성해나가고 있다. 올해 첫 시도다.

김 교사는 "학기 초 우리 반 쌍둥이 부모가 아이들이 미숙아로 태어나 발달이 느린 것을 걱정하면서 졸업하기 전 한글만 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마음이 아프고 막막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성취기준을 뽑아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교과서를 재구성하면 어떨까 생각하다 지역화 교과서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표지는 교목인 팽나무다. 김 교사는 팽나무 그늘에서 아이들이 가위바위보를 하며 노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마을-학교-교과서를 연결했다. 마을길을 산책하면서 바위를 배우고 돌탑 쌓기 활동을 한다. 가위놀이를 통해 쇠를 익히고 보자기 놀이로 이어진다. 1학년 솔잎마을반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가위바위보를 하고 줄넘기 횟수를 통해 큰 수-작은 수 의미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했다. 큰 줄기인 이야기를 따라 아이들이 교과서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 내용을 채운다.

◇평생 못 잊을 '석류' 두 글자 = 1학년 교과서 중간 페이지에는 가을 열매 '석류'가 등장한다. 교실에서 먼저 석류와 관련한 이야기보따리가 쏟아진다. "류 자를 어디서 봤을까?" 하는 교사 질문에 9월 부임한 류영선 교장 이름까지 등장한다. 김 교사 지도로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허공에 글자를 몇 번 그리더니 대뜸 교과서와 그림 도구를 챙긴다. 모두에게 익숙한 듯 가방을 메고 앞서 나간 김 교사를 쫓아 마을 석류나무를 찾아 나섰다.

아이들은 마을 굽이에서 마주치는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고 한 명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따라 불렀다. 한참을 지나 찾은 석류나무는 높은 담장이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몇몇이 활짝 열린 대문으로 들어가 자세히 보려고 하자 다른 아이들이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가면 안 돼" 하며 김 교사를 찾는다.

집주인 허락을 받고 석류까지 얻어먹은 아이들은 골목에 눕거나 앉아 그림을 그렸다. 즉흥적으로 석류 노래가 절로 나왔고, 석류를 주제로 한 시가 완성됐다. 이 과정에서 김 교사는 질문만 던지고 호응했다. "햇살은 어떤 색일까?", "석류 먹어보니깐 어때?" "너는 그렇게 그렸구나" 하고.

화제초 김진희 교사가 직접 만든 교과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교과서 석류 페이지를 채운 아이들은 손을 씻으려 우물가로 뛰어갔다. 마지막에 남은 아이는 앞서간 아이 한마디에 술래가 됐다. "지안이 술래" 소리를 들은 지안이는 가방을 채 잠그지도 못하고 뛰어갔다. 기자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온 한 아이는 "석류 먹어봤어요? 석류 맛은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신맛인데 중독성 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뛰어갔다. 수업 목표인 석류 두 글자 익히기에도 도달한 듯하다.

김 교사는 "25년 교직생활을 하면서 그림 그릴 일이 없어 잊고 살았다. 이전에도 문집은 계속 만들어왔지만 시험 범위만큼 진도를 맞춰야 하고 성적 부담에 책과 그림에 대한 갈증은 늘 있었다"며 "학교, 마을길, 아이들을 그리다 보니 자세히 보게 되고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더 나은 수업을 위해 공부하고 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나조차도 성장했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행복학교 지정 전인 2014년에 부임한 김 교사는 행복학교를 '해방구'라고 표현했다. 교사 스스로 하고 싶은 수업을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이전보다 더 치열하고 보람되게 사는 느낌이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1학년 수업이 유치원 수업과 다를 것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꼼꼼하게 연결된 통합 수업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었다. <몽실 언니>(분단시대 가난과 전쟁), <똥깅이>(제주 4ㆍ3사건), <황산강 베랑길>(양산 원동면 화제리 이하은 작가) 등 1학기 1권을 집중해서 읽는 슬로리딩 활동을 하는 4·5·6학년 독서 수준이 범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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