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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길·물길·뱃길' 세 물결 마주치는 요충지 '삼랑진'

[밀양청소년희망탐방대] (3) 작원잔도·삼랑창과 삼랑진역
삼랑진고교 삼랑진 방문 밀양강·낙동강 만나는 곳
임진왜란 격전지 작원잔도 깎아지른 산악으로 '험로'
조선시대 조창이던 삼랑창 특산물 배편으로 실어날라 일제 수탈 기점 되기도

2017년 12월 11일(월)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밀양에서 삼랑진 일대는 독특한 지위를 차지한다. 밀양이 옛날부터 교통요충지임을 알려주는 유적들 때문이다. 전통시대에 동래~서울을 이었던 동래로에서는 작원잔도가 요충이었다. 여기를 한 사람이 막으면 열 사람 백 사람도 지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작원관을 세우고 지켰다. 같은 전통시대 물길에서는 삼랑창이 핵심이었다. 영조임금 때인 1765년 조정에서 삼랑진에 조세창고를 설치했다. 삼랑창 또는 후조창이라 했다. 밀양을 비롯한 여러 고을에서 생산한 곡식과 베, 특산물을 모았다가(가을까지) 남해와 서해를 거쳐 서울까지 배편으로 실어날랐다(겨울 또는 봄에).

삼랑진역은 경술국치 직전에 생겨났다. 일제는 1905년 경부선 철도를 개통하고 삼랑진에 역을 내었다. 동시에 이 삼랑진역을 기점으로 삼아 마산까지 서쪽으로 철도를 내었다. 경전선 철도의 시작이다. 진해에 설치된 군항에 물자를 보급하는 목적이 가장 컸다. 나중에 1923년에는 일제가 다시 진주까지 경전선을 연장하였다. 남강 일대 너른 들판에서 나는 산물을 수탈하기 위해서였다.

삼랑진역급수탑. 옛날 석탄으로 기차를 움직이던 시절에는 물 공급이 기차 운행에 필수였다.

밀양청소년희망탐방대는 예림서원과 표충사에서 김종직과 사명대사라는 밀양 인물을 더듬어보았다. 밀양향교에서는 크고 멋진 문화재와 그에 깃든 전통문화를 살펴보았다. 또 용회마을에서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저항하는 우리 시대 할매·할배들의 대중운동을 마주했다. 그리고 삼랑진 일대에서는 그 지형지세가 과연 어떠하기에 옛적은 물론 오늘날까지 밀양이 교통요충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알아보았다. 시간 제약 때문에 모두 둘러볼 수는 없었다. △예림서원·밀양향교 △표충사·용회마을 △삼랑진 일대 셋으로 나눈 다음 학교마다 이 가운데 둘을 고르도록 했다.

삼랑진고 학생들이 경부선 철도 굴다리를 지나 작원잔도를 향하여 가고 있다.

삼랑진 일대를 선택한 것은 삼랑진고교였다. 같은 밀양이지만 그래도 바로 발딛고 있는 지역을 제대로 알고 누리자는 취지였겠다. 삼랑진고에는 다른 학교와 달리 탐방이 두 차례 배정되었다. 10월 28일은 오전에 삼랑진역과 작원잔도를 돌았다. 먼저 삼랑진역에서 사진을 찍게 했다. 삼랑진역 주변에는 일제강점기 또는 1960~70년대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 사진을 찍고 엮어서 스토리텔링을 해 보았다. 학생들은 상상력이 남달랐다. 다섯 명씩 짝지어진 모든 팀이 스토리를 만들어내었다. 이 가운데 젊은 시절 아프게 헤어진 남녀가 30년 넘어 다시 만나는 곡절과 사연을 풀어낸 팀이 박수를 가장 많이 받았다.

작원잔도 아래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삼랑진고 학생들.

작원잔도(鵲院棧道)는 작원관지에서 시작된다. 일대는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였다. 1592년 4월 17일 당시 밀양부사 박진은 여기에 진을 치고 하루 이상을 제대로 버텨냈다. 서울까지 스무 날만에 쳐들어갔던 왜군에게는 조선 땅에서 가장 먼저 맞이한 제대로 된 저항이었다. 박진이 동원한 인원은 300명이었다. 왜군은 1만8000명이 넘었다. 적은 인원으로도 버틸 수 있었던 까닭은 여기가 험로였기 때문이다. 한쪽은 깎아지른 산악이고 다른 한쪽은 낙동강이다. 작원잔도에서 작원은 밀양을 지나는 낙동강을 일컫는 말이다. 잔도는 벼랑에 억지로 낸 길을 뜻한다. 혼자서도 다니기 어려울 만큼 좁은 길이다.

작원관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육군이 최초로 벌인 전투다운 전투였다. 왜적은 정면으로 나서기만 해서는 뚫을 수 없었다. 군사를 북서쪽으로 보내어 산악을 돌아 치는 전법으로 물리쳤다. 작원관은 경북 문경의 조령관과 함께 동래와 서울을 연결하는 교통·국방의 첫 관문이었다. 평시에는 사람과 말을 묵게 하는 원(院)의 기능을 했고 전시에는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관(關)의 기능을 했으며 아울러 강물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나루터 진(津)의 기능까지 함께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건물을 세우고 오가는 사람과 물자를 감찰했다.

작원잔도가 그동안은 일제의 경부선 철도 부설 당시 모두 망가진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일제는 그곳 험준한 데에다 터널을 뚫어 지나가도록 했다. 덕분에 강가에 좁디좁은 잔도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낙동강 강물 위로 나 있는 자전거길을 따라 양산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왼편에 바로 보인다. 여기서 밀양 친구들은 옛날에 왜 이토록 길이 험했는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삼랑진고 친구들은 이날 낙동강 푸른 물과 단풍을 함께 즐기며 옛적 밀양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몸으로 느꼈다.

삼랑창 자리 삼강사비(왼쪽)와 오우선생약전비.

오는 16일에는 삼랑창으로 간다. 삼랑진읍 삼랑리 상부마을이다. 여기 가면 후조창 유지 비석군이 있다. 후조창은 삼랑창의 다른 이름이다. 비석들은 당시 벼슬아치들 선정을 기리는 내용이 적혀 있다. 당시 여기 살던 사람들이 자기네 솜씨로 세웠다. 이 가운데 '부사 김후 인대 유애비(府使金侯仁大遺愛碑)'는 한 번 새겨볼 만하다. 삼랑창이 만들어진 당시 기록이기 때문이다. 1765년 밀양부사 김인대가 삼랑창을 조성하느라 애를 썼다고 이듬해(1766년) 지역민들이 만들었다.

옛적 조세창고의 흔적은 이런 것들로 그만이고 대신 새로 지은 오우정 따위가 들어서 있다. 민씨(閔氏) 집안 다섯 형제가 여러 모로 잘 지낸 데 따라 처음에는 1500년대에 세워졌다. 한때는 삼강서원이었다. 얽힌 사연들은 앞에 있는 삼강사비와 오우선생약전비를 보면 알 수 있다. 삼강사의 삼강(三江)은 삼랑진의 삼랑(三浪)과 통한다. 밀양강의 물결(浪)과 낙동강의 물결 그리고 부산 쪽 낙동강 하구에서 밀물 때 밀려드는 물결, 이렇게 세(三) 물결(浪)이 여기 삼랑진에서 마주친다. 일제는 서부경남 수탈을 위하여 삼랑진철교를 놓았다. 풍경이 제대로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날씨가 추워도 여기를 걸을 것이다.

후원 : 밀양시청

주관 : 밀양교육지원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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