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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참모습을 깨달았느냐

[괴테루트 따라 떠나다] (5) 트리엔트 공의회 앞에 나를 세우다
트리엔트 공의회 열렸던 산타마리아 마기오레 교회
매시간 울리는 성당 종소리 기도·죄 사함의 의식 같아
가톨릭 쇄신·개혁 논했던 역사의 현장에 서 있으니 원칙·형식·절차 벗어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돼

2018년 04월 24일(화)
시민기자 조문환 webmaster@idomin.com

집을 떠나온지 열흘이 넘었다. 7시간의 시차가 있어서 가족과는 거의 밤과 낮이 바뀐 상태에서 연락을 하게 되어 현실감각이 많이 둔해져 있다.

어느덧 9월의 햇살이 내려앉은 평사리 들판은 황금색 톤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의 동반자 괴테 또한 이 시간 즈음에는 향수에 젖어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그도 별수 없는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이기도 하다.

"고향의 먼지도 그토록 오랜만이니 얼마나 반가운지, 종소리나 방울 소리 같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극히 사랑스러우니, 귀를 찢을 듯한 소리도 불쾌하지 않다"라는 말로 향수를 대신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늦은 밤에는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머리를 흔들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곤 한다. 오랜 여행에는 숨어 있던 적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바로 외로움과 고독이다.

사실 이것을 즐기려고 떠난 것인데 내 편이 되어줘야 할 고독이 한 번씩 적이 되어 내 곁에 서성거리는 것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기도 한다. 어떻든 간에 이 녀석을 내 편으로 만들고 내 곁에 서성이는 것이 아닌 내 품속에 들어와 안기도록 하는 것이 내 여행을 풍요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아디제 강이 아니라도 이곳에는 강이 있을 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태양은 골짜기 사이로 파고 들어와 알프스에서 남쪽으로 광(光) 열차처럼 치닫는다. 가끔 산맥줄기 허리 즈음에 암석 띠가 있어 마치 허리띠를 찬 것 같이 단단해 보인다. 볼차노에서 남쪽으로 약 50km 떨어진 트렌토를 향했다. 트렌토는 규모로만 본다면 볼차노와 큰 차이는 없다.

단지 역사적 사건이라든지 유물과 같은 것들은 볼차노보다 더 나은 위치에있어 보였다. 역에 내려 15분여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고성(古城) (Buonconciglio Castle Museum)에 이집트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돌아보았다.

산타마리아 마기오레 교회 외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외관을 가꾸는데 정성을 기울이는 느낌이다. 우리는 주로 화단을 마당 안에 만드는 반면 이들은 창가에 화분을 설치해 놓는다. 대부분 도시의 단독주택이나 아파트를 막론하고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자신의 만족도 좋지만 타인의 만족과 기분을 생각하는 관습에서 온 것일 것이다. 어쨌든 오래되어 어둡고 칙칙한 건물과 거리가 이러한 화분들로 인하여 밝고 명랑해 진 것은 틀림없다.

내가 이 도시를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유명한 트리엔트 공의회가 열렸던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이 트리엔트 공의회는 1545년부터 1563년까지 장장 18년간이나 열렸었다. 3기로 나눠서 열렸던 이 공의회는 천주교 역사, 나아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자 기록으로 남은 사건이었다. 루터(1483~1546)의 95개조 반박문 발표(1517년)를 비롯하여 당시에 분출되었던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의 공격을 향해 이론적으로, 신앙적으로 정당성을 갖추고 교회의 자기 개혁을 정립하려는 것이었다.

산타마리아 마기오레 교회 외부 정문에는 '아베 마리아'가 선명하다.

이 공의회가 열렸던 장소는 산타마리아 마기오레 (Santa Maria Maggiore)교회였다. 지척에 더 큰 두오모가 있음에도 훨씬 작은 규모의 이 교회에서 공의회가 열렸던 것인데, 이 성당은 1520년에서 1524년에 걸쳐 지어져 졌다고 교회의 머릿돌에 새겨져 있으니 교회가 준공된 후 불과 21년 만에 공의회가 열린 것이다.

시청과 단테광장을 지나 산타마리아 마기오레 교회 앞 광장에 서니 마침 12시, 시간마다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하늘과 거리를 거룩하게 씻겨 놓았다. 광장에 있는 나 같은 이방인뿐 아니라 그 소리에 젖어 사는 시민에게는 이 종소리가 하나의 비적이 되리라. 거룩한 소리를 들었으니 오늘 나의 문제와 죄악은 말끔히 씻어질 것이라는 하나의 기도와 죄 사함의 의식이기도 한 것이다.

이탈리아에 온 지 열흘쯤 되니 이런 종소리도 이제 일상이 되고 습관이 되었다. 습관이 되면 좋을 것들이 있겠지만 습관은 타성에 젖게 하는 것이니 이 성스러운 종소리를 듣는 것만은 습관이 아닌 시간마다 들리는 거룩한 기도이면서 나를 일깨우는 회초리이면 더 좋겠다.

산타마리아 마기오레 교회에서 열렸던 공의회 결과는 앞으로 가톨릭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지침을 정한 것으로서 당시로써는 상당한 개혁적인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변화와 저항에 따른 타율적인 개혁일 뿐만 아니라 개혁의 내용 또한 기존의 가톨릭 본질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낡은 개혁에 머물렀을 뿐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면죄부가 대폭 폐지되고 사제의 독신이 더욱 강화됐으며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 세례, 고해, 성찬, 종부, 서품, 결혼, 견진과 같은 비적 그 자체가 내적인 신앙에 관계없이 은총이 내려진다는 것 등을 확정했었다.

교회는 상시 개혁의 칼날 위를 걸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지체이기 때문이다. 신앙은 그 위에 다른 것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론이나 철학이나 학문이나 법률이나 하는 것들은 개정하고 학설을 철회하거나 연구하여 새롭게 세우면 되지만 신앙은 신,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오직 말씀만이 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다. 사람으로 인하여, 형상으로 인하여, 절차나 의식과 같은 이런 비적인 것들이 교회의 중심에 자리하고 예배 의식이 구원의 절차가 되고, 예수님이 아닌 다른 성인이나 마리아가 구원의 통로가 된다면 이는 우상을 섬기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고성(Buonconciglio Castle Museum)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 중세 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듯하다.

산타마리아 마기오레 교회는 문이 열려 있었다. 몇몇 방문자들이 잠시 앉았다가 돌아가는 모습만 보였다. 성당 입구에는 'AVE MARIA(아베 마리아)'가 문 위에 적혀 있었고 붉은 대리석 기둥이 좌우에 바치고 있었다. 예수님은 여전히 십자가에 '달려' 계셨고 성당 안 좌측에는 당시 공의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의 복사본이 세워져 있었다. 엄격한 주교단 회의의 분위기가 지금도 전해 오는 것 같았다.

역사의 현장에 서 있어 보는 것은 나를 본질로 돌아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온갖 나를 가두어 놓았던 것에서 벗어나게 하고 눈을 가리어 놓았던 것을 풀어헤치게 하며 막아 놓았던 귀를 열어 역사의 원음을 직접 듣게 하는 것이다.

454년 전 바로 그 자리에 내가 서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가톨릭을 위한 것뿐 아닌 오늘의 나를 위한 공의회였기도 하다. 바로 서라는 엄중한 경고의 자리였다. 사람이 어떻게 결의를 했던지 역사와 오늘의 신앙인들은 공의회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AVE MARIA(아베 마리아)'가 쓰여 있는 정문을 들어가는 그 시간에 하나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거기에 서서 하늘의 소리를 들어라!" /시민기자 조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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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적(秘籍) : 신의 은총을 받기 위한 가톨릭교회의 의식을 말하며 주로 세례, 고해, 성찬, 서품 등을 일컫는 것으로서 신의 은총이 수여되는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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