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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읽는 꽃 이야기]첫사랑에 눈뜬 소녀 프리지어

숲속 호수 요정 프리지어 소년 나르시스를 짝사랑
여신도 이들 모습에 감동, 향 짙은 꽃으로 피게 해

2018년 05월 17일(목)
시민기자 조현술(동화작가) webmaster@idomin.com

물안개가 꿈길처럼 아슴푸레하게 피어나는 숲 속 호수이어요.

그 호수 속에는 꽃송이 같은 예쁜 요정들이 밝은 햇살을 받고, 맑은 물속에서 어린아이들처럼 찰방거리며 놀고 있었어요. 요즘, 그 요정 중에서 프리지어가 사춘기 아이들처럼 나르시스라는 소년에게 무척 관심이 많아졌어요.

다른 요정들이 그런 프리지어 요정을 시샘이라도 하듯 놀렸어요.

"좋겠다. 너는 그 미남 나르시스를 사랑하니."

"아직 일러, 이제 겨우 작업 중이야. 호호호."

요정 프리지어는 여러 요정의 그런 부러움을 받는 것이 좋았어요. 그녀는 날렵한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호숫가를 거닐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어요. 프리지어 요정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나르시스 생각밖에 없거든요.

"오늘도 나르시스가 이 호수 앞길을 지나가겠지."

"나르시스가 언제나처럼 연못 속만을 들여다보고 있겠지."

4월의 푸른 하늘이 열리고 밝은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음표처럼 흔들리며 쏟아졌어요. 그런 푸른 4월의 싱그러움보다 프리지어에게는 오직 나르시스의 얼굴만 물수제비처럼 마음속에 퐁퐁퐁 맴돌았어요.

"오늘도 나르시스가 나를 보고 모른 척 지나갈까?"

바로 그때였어요.

프리지어가 호숫가 숲 속 멀리 백양나무 숲에서 사람의 그림자를 언뜻 보았어요. 그 그림자의 주인이 나르시스라는 것을 확인한 프리지어의 눈빛이 갑자기 햇살처럼 반짝이고 온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어요.

"와! 드디어, 오늘은 나르시스와 말을 나눌 수 있을까?"

프리지어는 호흡을 가다듬고 떨리는 가슴을 하얀 손으로 다독이었어요.

드디어, 나르시스가 몇 마리의 양을 몰고 프리지어 바로 앞에까지 왔어요.

프리지어는 나르시스를 보자, 숨이 멎을 것 같았어요. 아기 같은 하얀 피부에 인형처럼 곱게 다듬어 놓은 얼굴, 파란 하늘 같은 눈빛, 무슨 말을 걸어도 받아줄 것 같은 넉넉한 가슴은 너무도 멋있는 소년의 모습이었어요.

나르시스가 프리지어 바로 앞에까지 오자, 그녀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어요.

"나르시스, 너를 많이 기다렸어."

프리지어가 다정하게 말을 하고 떨리는 손을 나르시스에게 내밀었어요.

나르시스는 그런 프리지어를 무시라도 하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프리지어 앞을 지나, 평소에 하는 것처럼 자작나무 숲 연못가로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어요. 나르시스는 프리지어를 전혀 상대도 하지 않겠다는 싸늘한 태도였어요.

상기되었던 프리지어의 얼굴빛이 파랗게 질렸어요.

"나를 왜 이렇게 철저히 무시하는 것일까!"

프리지어는 자기를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나르시스의 뒷모습만 뚫어져라 바라보았어요. 그런 프리지어를 뒤로하고 나르시스는 자기가 항상 찾아가는 연못가에 가서 연못 속만을 들여다보았어요. 연못 속에는 하얀 구름이 양떼처럼 떠가고 푸른 물빛 속에는 소년의 맑은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어요.

해님은 연못 속이 하도 궁금해서 소년의 어깨너머로 살며시 들여다보았어요. 파란 하늘빛만 고여 있는 연못 속에는 맑은 눈빛, 하얀 피부를 가진 소년의 얼굴이 그림처럼 동동 떠 있었어요.

소년은 연못 속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무언가 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어쩌면 소년은 연못 속에 비치는 그 얼굴이 자신의 얼굴인지도 모르고 그 연못 속에 정신이 빠져 있는 것 같았어요.

'파란 눈빛, 저 하얀 이, 하얀 피부, 입만 열면 고상하고 아름다운 말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입, 이 세상의 어느 것보다 아름답고 고상해.'

나르시스는 연못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참으로 이상한 것을 느꼈어요. 무슨 놀이를 하듯이 나르시스가 연못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넣으면 넣을수록 얼굴이 더 커지고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이 신기했어요. 소년은 그것이 재미있어 얼굴이 하루가 다르게 연못 속으로 자신의 얼굴을 더 가까이 내리밀었어요. 이제 조금만 더 연못 속에 얼굴을 가까이하면 나르시스의 몸이 물속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어요.

프리지어는 멀리서 그런 나르시스를 바라보기만 했어요. 나르시스가 자기를 무시하면 할수록 프리지어는 더 참을 수 없어 나르시스 가까이 가고 싶어 멀찍이 나르시스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속만 태웠어요.

'나르시스는 연못 속에 무엇이 있기에, 저렇게 매일 연못 속만 들여다볼까?'

그러던 어느 날, 프리지어가 호숫가 나무에 기대어 나르시스 생각을 하며 멀리 연못가를 보았어요. 이상하게도 그날은 나르시스가 연못가에 보이지 않자, 프리지어는 그 일이 하도 궁금해서 연못가로 달려갔어요.

"이상해.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나르시스가 연못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시간인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연못가에 헐레벌떡 뛰어온 프리지어는 연못 안을 여기저기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다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어요.

"나르시스, 나르시스가 연못 안에 빠져 죽다니."

나르시스가 연못 속 바닥에 눈을 뜨고 누워 있었어요. 맑은 물속에서 약간의 웃음을 띤 얼굴로 파란 눈을 뜬 채 반듯이 누워 있는 모습은 죽어 있는 나르시스의 모습이 아니고, 잠시 잠을 자는 그런 모습 같았어요.

"아, 나르시스의 저 웃음 속에는 나를 생각하고 있는지 몰라!"

프리지어는 자신의 마음이 한 장의 꽃잎처럼 파르르 떨려오자, 연못 안에 빠져 들어가 나르시와 나란히 누워 있고 싶은 충동이 연못의 물결처럼 잔잔히 일어났어요. 무섭지도 않고 참으로 이상한 호기심 같은 것이었어요.

그 순간, 프리지어의 몸이 자신도 몰래 연못 안으로 미끄러지듯 스르르 빨려들어 가고, 꼬르륵 물거품이 오르더니 프리지어도 나르시스 곁에 나란히 눕게 되었어요.

하늘의 해님이 이 모습을 보고 너무도 안쓰러워 더는 볼 수 없었던지, 구름 속으로 잠시 얼굴을 숨겼어요. 맑은 연못 속에는 프리지어와 나르시스가 한 장의 그림처럼 나란히 누워 있었어요.

꽃의 여신 플로라가 너무도 아름다운 그림 같은 이 이야기를 알게 되었어요. 플로라는 프리지어의 그 순수한 사랑에 감동하여 그녀를 아름다운 프리지어 꽃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었어요. 그 꽃에다 아주 달콤한 향기까지 듬뿍 넣어 주었답니다. 우리가 말하는 프리지어꽃이어요. 프리지어꽃 향기가 짙은 의미가 무엇일까요?

프리지어 꽃말은 순결, 청초, 천진난만함이래요.

/시민기자 조현술(동화작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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