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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만 싶던 내 고장 이제 사랑스러워요"

[밀양 청소년 희망탐방대] (1) 밀양의 특징이 담긴 네 가지 탐방 대상
이미 알고 있던 표충사·영남루서
뻔한 지식 아닌 특징·전설 발견
시·군 단위 유일 독립운동기념관
위풍당당 향교·아늑한 예림서원
교통요지 일러주는 흔적도 답사
역사·자연환경 몸소 느끼는 시간

2018년 06월 21일(목)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밀양청소년희망탐방대를 운영한다. 밀양시청이 후원하고 밀양교육지원청이 기획하여 경남도민일보가 진행한다. 밀양 중·고교 학생들이 밀양을 좀더 알고 고장에 대한 애정을 갖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지난해 "밀양은 좁고 갑갑해서 싫다, 하루빨리 떠나고 싶다"는 학생이 있었다.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 받은 충격이 컸다. 그런데 탐방을 마치고는 "고향 밀양이 자연이 아름답고 역사가 멋진 줄 알게 되어 이제는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는 소감문을 내어 기뻤다.

자라나는 학생들이 지역을 싫어하고 무시하는 것은 어른들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탓이 크다. 학교는 대학입시에 안 나온다는 이유로 지역 역사·문화 교육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고장의 역사문화와 자연을 제대로 알려주고 그 특징과 장점을 들여다보게 해주면 아이들도 충분히 고장을 뿌듯해하고 아끼는 마음을 낸다.

밀양에서 역사문화 탐방 지역은 대체로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밀양을 대표하면서 널리 알려진 것으로 표충사와 영남루를 꼽을 수 있다. 표충사는 임진왜란 당시 밀양 출신으로 승병장으로 활약했던 사명대사와 관련이 있고 영남루는 부벽루(평양)·촉석루(진주)와 더불어 3대 누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밀양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 같으면 누구나 한 번 들렀을 장소다.

영남루에 올라 얘기를 나누거나 풍경을 감상하는 모습. 밀양강이 흐르는 너머로 밀양 시가지가 보인다.

이런 지역을 탐방할 때는 그곳에만 있고 다른 데는 없는 특징을 찾아 보여주게 된다. 그래야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다. 표충사의 역사가 얼마나 깊고 유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는 것은 별로 보람이 없다. 그런 지식은 인터넷만 열면 무궁무진 쏟아진다. 뿐만 아니라 지역 학생들은 유명한 문화재는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어서 싫증나고 질리게 하는 측면도 있다. 대신 특징을 알려준다. 지키는 사천왕이 여자 형상을 밟고 있는데 우리나라 어느 절간에서도 보기 어렵다든지 재약산 사자평에서 시작된 약수가 좋아서 옛날 신라 왕자의 한센병을 낫게 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라든지 격식없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아름다운 우화루는 전국 모든 절간에서 으뜸이라든지를 들려주는 것이다.

영남루는 이렇다. 이게 얼마나 크고 멋진지는 일부러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가서 올라보기만 해도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여기에는 다른 누각에서는 볼 수 없는 현판이 둘 있는데, 일곱 살과 열한 살로 동생뻘 되는 아이가 쓴 것이라며 찾아보게 한다. 그러면 대체로 흥미로워하면서 신기하게 여긴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 다른 친구들과 찾았을 때 영남루의 숨겨진 면모를 얘기하며 함께 즐길거리도 하나 생긴 셈이다.

마당을 지나 표충사 정문에 해당되는 수충루를 향해 걷는 사람들. 수충루 너머 나무들이 정말 대단하다.

둘째, 밀양시립박물관·독립기념관도 밀양 학생이면 한 번은 들렀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박물관이나 기념관은 건성건성 둘러보기 쉽다. 뜻깊은 유물과 자료가 있는데도 그러려니 지나치기 일쑤다. 이런 데서 호기심을 돋우려면 이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일러준다. 전국에 박물관은 많아도 독립기념관은 드물다. 더구나 시·군 단위 독립운동을 총괄하는 기념관은 밀양이 유일하다. 전국에서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이 밀양만큼 대규모로 꾸준하게 벌어진 데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인한 독립운동가만도 밀양은 73명이나 된다고 일러주면 좀더 흥미를 갖게 마련이다. 다른 시·군은 30명도 넘기 어려우니까.

셋째 밀양향교와 예림서원도 있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밀양이기 때문에 지금 모양으로 밀양에 있는 문화재다. 다른 지역 향교들은 대부분 고만고만하지만 밀양향교는 아니다. 조선시대 밀양이 경남에서 진주와 함께 대단한 고을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소나무와 향나무 은행나무 잣나무 배롱나무 등 향교를 둘러싼 나무들도 멋지다. 더하여 정문 풍화루와 강당 명륜당, 그리고 사당 대성전을 비롯한 건물 모두가 위풍당당하다. 오늘날 공립 중등학교에 해당하는 밀양향교가 이처럼 우람하다면 옛적 사립 중등학교라 할 수 있는 예림서원은 느낌이 편안하다. 조선 사림파의 시작이자 스승으로 유명한 밀양 출신 점필재 김종직을 모신다. 밀양향교와 달리 아담한 편이며 더불어 아늑함과 소박함, 아기자기함이 남다르다. 여기서는 누각이나 강당 마루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는 것으로도 충분할 때가 많다.

1923년 세워진 삼랑진역 급수탑. 석탄을 때서 수증기의 힘으로 엔진을 움직이던 시절 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넷째로는 내륙 교통요지로서 밀양을 일러주는 문화재들이다. 가까이는 1905년 문을 연 삼랑진역과 일대 적산가옥이 있다. 철도 경부선과 경전선이 마주치는 자리다. 그러다보니 일제강점기는 물론 1980년대까지 사람과 물자가 넘쳤다. 멀지 않은 역사를 짚어보면서 그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 보기 알맞다. 멀리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있던 옛길 작원잔도가 있다. 남북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기에 부산을 가든 서울을 가든 반드시 거쳐야 했다. 낙동강가 벼랑에 있는 좁고 험한 경로여서 군사적으로 여기를 지키면 일당백을 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왜적 1만 8000명을 밀양부사 박진을 비롯한 조선 군사 300명이 가로막고 하루 넘게 버틸 수 있었다.

밀양에는 육로만 아니라 수로도 있다. 낙동강·밀양강·남해바다의 세(三) 물결(浪)이 만나는 나루(津) 삼랑진이다. 물론 상류로도 갔지만 서울로 짐을 싣고 가는 물길은 낙동강 하류를 거쳐 남해와 서해를 지나 한강으로 들어갔다. 1765년 조정에서 여기에 조세창고 삼랑창을 설치한 까닭이다. 면포와 나락·특산물 등 전통시대 조세물품을 모아두었다가 임금한테 가져가는 안성맞춤 수로였다.

삼랑창 부근에 남아 있는 관련 유물들. 왼편에 당매대(棠梅臺)라 새겨진 바위가 있고 오른편에는 당시 벼슬아치들 칭송하는 선정비가 늘어서 있다.

밀양청소년희망탐방대는 이 네 가지를 바탕으로 삼고 밀양의 아름다운 생태자연까지 살짝 곁들인다. 학교 요구 등에 맞추어 네 가지 가운데 둘 또는 셋을 둘러보면 하루 일정으로 적당하다. 1학기에는 5월과 6월에 각각 두 차례와 한 차례 진행했으며 2학기에는 9~11월 여섯 차례 치러진다.

△후원 : 밀양시청

△기획·주관 : 밀양교육지원청·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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