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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과 문화] (4) 함안 용화산 일대의 낙동강

오랜 시간 빼어난 정취 품어온 '느릿한 강물'
남지·용화산서 보면 산과 들판이 에워싼 호수 닮은 강
경치로 이름난 경양대 주변 오래전 상선·나그네 행렬
선비·의병이 아늑한 풍경에 쉬며 수양한 정자 곳곳에

2018년 06월 26일(화)
공동취재팀 pole@idomin.com

◇호수 같은 낙동강

남강은 낙동강의 가장 큰 지류다. 지리산과 덕유산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경남 서부와 남부를 흘러내린다. 이렇게 여러 물줄기를 쓸어담은 남강은 함안과 의령을 남북으로 가르며 낙동강에 들어선다. 남강이 낙동강에 보태는 수량은 전체의 25%가량을 차지한다. 남강을 받아들이면서 낙동강이 호수같이 잔잔해지는 까닭이다. 게다가 남해바다의 밀물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는 지금도 바닷물고기인 웅어가 잡힐 정도다. 강물이 밀물에 막혀 흐름이 더욱 느려지는 것이다.

낙동강은 풍경조차 호수와 닮았다. 멀리 바다를 향하는 물줄기는 동남쪽으로 휘어졌다가 북동쪽으로 솟구친다. 그러면서 끄트머리를 양쪽 강변 산자락 사이로 슬쩍 감춘다. 가까이 창녕 남지가 있는 동쪽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함안 대산·칠북의 서쪽은 190m 높이 용화산이 바짝 다가선 채 3㎞가량 이어진다. 용화산이나 남지 들판에서 보면 낙동강은 사방을 산과 들판이 둘러싼 영판 호수다.

옛사람들은 남강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어귀인 기음강(岐音江)을 기호(岐湖)라 이르기도 한 까닭이다. 아울러 용화산과 붙어 있는 낙동강을 두고는 아호(鵝湖)라 했다. 크고 하얀 고니가 노니는 호수라는 뜻이다. 길이로 보면 기호 하류에서 지금 남지철교가 있는 언저리까지 3㎞ 남짓이다.

두암 조방의 반구정. 원래는 낙동강변에 있었으나 후손들이 1858년 용화산 지금 자리로 옮겨 지었다.

◇900년 전 명승지 경양대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373 칠서취수장은 강가 벼랑 위에 있다. 바로 경양대(景釀臺) 자리다. 지금은 이름을 잃었지만 옛날에는 낙동강에서 첫손 꼽히는 명승이었다.

멋진 풍경(景)과 좋은 술(釀)은 언제나 단짝이다. <동국여지승람> 칠원편에 나온다. "벼랑에 우뚝한 바위가 위는 평탄하여 손바닥 같은데 10명 남짓 앉을 만하다. 이인로가 일찍이 여기서 놀았다." 이인로(1152~1220)라면 900년 전 고려 사람이니 경양대는 아무래도 일찍부터 유명했던 모양이다.

마주 보이는 절벽 위가 경양대. 남지철교와 경양대 사이에 보이는 기와집은 능가사라는 절간이다.

고려말 조선초를 살았던 이첨(1345~1405)이 남긴 시도 있다. "강 위엔 가을빛이 맑고 그윽한데 한가한 날 배를 띄웠네. 물은 쪽빛 같고 모래는 눈 같으며, 산은 병풍 같고 술은 기름 같아라. 바위벽은 물결에 깎이고 피리 소리는 시름을 깨뜨리네." 조선 선비 간송 조임도(1585~1664)도 글을 남겼다. "물결이 잠잠하고 바람이 멈추면 온갖 산이 거꾸로 비치고, 고요한 밤에 강이 텅 비면 달과 별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나루도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경양대 동편으로 남지대교 근처까지 평탄한 강변과 그에 이어지는 도도록한 바위 언덕이다. 우(질)포 또는 상포(上浦)라 했는데 토종말로 하면 웃개로 똑같다. 하나는 한자에서 소리를 땄고 다른 하나는 뜻을 땄다. 간송은 1618년 "흰 모래와 푸른 대나무가 있어 강촌이 맑고 수려한데 물을 따라 오르내리는 상선(商船)이 강어귀에 끊이지 않는다"고 적었다. 남지철교에서 상류쪽 서편 벼랑 너머에는 도흥진이 있었다. 여기 이르려면 가파른 고개를 넘어야 했다. 그래서 화물보다는 여객 운송 위주였던 것 같다. 간송은 "도흥을 거쳐 남북으로 오가는 나그네가 하루 수백 명에 이른다"고 했다.

◇합강정·반구정·망우정

합강정(合江亭)은 간송 조임도가 1633년에 지었다. 말 그대로 남강과 낙동강이 합해지는 자리 용화산 기슭에 있다. 건물은 쑥대 우거진 가운데 조그맣게 짓고 앞뒤 동산은 매화 대나무 소나무 국화가 우거지도록 했다. 합강정은 내려다보는 강변과 건너편 풍경이 모두 그럴듯하다. 위로는 하늘이 펼쳐지고 아래로는 연못이 보이며 오른쪽엔 구름이 뜨고 왼쪽엔 달이 뜬다.

반구정에서 바라본 낙동강. 사방이 산과 들판으로 둘러싸인 호수처럼 보인다. 멀리 왼편으로 남지철교가 보인다.

스승을 기리는 마음도 담겨 있다. 간송은 한강 정구에게서 배웠고 한강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모두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퇴계는 낙동강 상류 안동 도산서당에서, 남명은 남강 상류 산청 덕산 산천재에서 가르침을 펼쳤다. 두 가르침이 낙동강과 남강을 타고 흘러와 합강정에서 합해졌다. 자신의 근원이 퇴계와 남명에게 있음을 뚜렷하게 밝힌 것이다. 간송은 임금이 벼슬을 주면서 불렀는데도 나가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니 출세가 아니라 수양을 위하여 배움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밝힌 셈이겠다.

합강정보다 좀더 깊은 용화산에 반구정(伴鷗亭)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 곽재우와 더불어 의병 활동을 벌인 인물 가운데 두암 조방(1557~1638)이 있다. 전란이 크치자 함안 칠북 웃개 말바위(두암=斗巖)에 정자를 지었는데 원조 반구정이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허물어져 1858년 후손들이 지금 자리로 옮겨 지었다. 호수처럼 넓은 낙동강과 때때로 내려앉는 물새가 잘 보이는 자리다. 원래는 여기에 청송사(靑松寺)가 있었다. 간송의 한시를 보면 1600년대에 이미 700년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1만 그루 겨울 소나무와 모래톱 위에 뜬 달/ 1000마리 하얀 새 무리와 안개낀 나루터/ 긴 강은 끊임없이 동쪽으로 바다 향해 흐르고/ 산봉우리 푸르게 잇닿아 북쪽으로 하늘에 닿았네'. 두암 조방은 조임도한테 작은아버지가 되는데 둘 다 함안 사람이다.

합강정. 여기서 바라보는 낙동강도 풍경이 나쁘지 않다.

곽재우(1552~1617) 장군이 늘그막에 지내다 세상을 떠난 창녕 우강마을의 망우정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원조 반구정에서 동북쪽으로 강 건너편 언덕에 있다. 간송이 1618년에 적은 글이다. "동북쪽 사방 10리를 조망할 수 있는 모퉁이에 푸른 절벽과 검은 못 위에 날아갈 듯한 정자는 곽선옹(郭仙翁)의 망우정사(忘憂精舍)다. 선옹은 학을 타고 하늘에 조회 간 지 1년 남짓 되었다. 강 바깥의 큰 들판은 아득하고 평원은 평탄하다. 산과 언덕이 다한 곳은 달리는 듯 서 있고 일어선 듯 엎드렸다. 나룻가에 촘촘한 소나무 100여 그루는 비취색 일산이 무성하게 늘어선 것 같네."

맞은편 강변은 곽재우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두툼한 모래톱을 길게 뻗어내렸을 것이다. 그 멋진 풍경은 보는 이들을 모두 즐겁게 했으리라. 그런데 아쉽게도 이명박 정부 시절 4대 강 사업 준설 이후 통째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강물만큼은 지금도 유장하다. 태양이 서쪽으로 살짝 기우는 즈음에 찾아가면 물결에 되비쳐 오는 햇살이 얼굴을 환하게 물들인다.

창녕 망우정.

주관 :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

문의 : 환경교육팀 055-533-9540, gref2008@hanmail.net

수행 :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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