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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루트 따라 떠나다] (11) 어느 날 다가온 장미 한 송이

볼로냐 사람들, 평범함 거부 기질 타고나…자신의 생각·가치 중요시
붉은 건축물·포르티코 등 도시 곳곳에서 개성 발견
진보 역사의 바탕 되기도

2018년 07월 17일(화)
시민기자 조문환 webmaster@idomin.com

괴테는 틀렸다. 비첸차 사람들이 신사적이라고, 특히 여성들이 잘생겼다는 그의 의견에 찬성할 수 없다. 비첸차와 파도바, 베네치아까지만 해도 그의 말은 사실이었으나 볼로냐역을 빠져나와 시내 중심가로 오는 길목과 또 거기서 숙소를 나와 시내 중심가를 몇 바퀴 돌아보고 난 후에는 그의 말이 틀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보기에는 볼로냐 사람들이 정말 신사적이고 남성과 여성 할 것 없이 더 멋진 인상과 몸매를 지녔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소 말뚝도 예뻐 보인다는 속담이 있지만 구태여 나의 비유를 그곳에 대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실이니까.

◇그를 따르는 이유

하지만 다른 하나는 괴테가 맞다. 예술 작품에 대한 생각은 그가 맞다. 어쩌면 그렇게 나와 생각이 같을 수 있는지 파안대소를 해야 할 때라면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괴테는 볼로냐에 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 버렸다. 참을 수 없었다.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속이 끓고 헛배가 불러서 터질 것 같았을 것이다. 아니지, 임금님은 벌거숭이야 라고 길거리에서 외쳐 버렸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신앙심이 예술을 높였지만 미신이 지배하면서 예술을 침몰시켰다"는 것이다.

화가는 일종의 직업이다. 예나 지금이나 배고픈 직업이다. 물론 배부른 화가들도 있겠지만. 이 배고픈 화가들을 발주자나 정부, 교회가 돈을 주고 그들의 혼을 뺏어 버렸다. 화가는 그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원로원이나 교회와 같은 권력자들과 재력가들의 입에 맞는 그림만 그려 댔다. 작품에 화가의 정신이 투영된 것이 아니라 의뢰인의 의도만 그려 넣었다.

나는 볼로냐에서는 박물관이라든지 미술관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미 베네치아와 그 이전의 도시에서 여러 곳 들러 본 후 괴테와 같은 심정을 가졌었으니 이 어찌 스승을 만난 기쁨이 아니겠는가? 볼로냐에서 쓴 그의 글을 읽으면서 박장대소를 할 지경이었으니.

이곳에 작품을 남겼던 귀도나 도메니코 참피에리, 안니발레 카라치와 같은 화가들은 그들의 탁월한 기량과는 다르게 엉뚱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괴테는 귀도를 애처롭게 여기면서 "멘디칸티 교회에 있는 귀도의 그림은 인간이 그릴 수 있는 모든 것이지만 또한 화가에게 주문하고 요구할 수 있는 무의미한 모든 것이기도 하다"라고 한탄했다.

투 타워인 아시넬리 탑과 가리젠타 탑. 다른 기울기로 두 개의 탑이 겹쳐져 아찔하다.

과연 대가다운 배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들 화가는 그림 속에 그림 주제와는 다르게 그들만의 코드를 심어 놓은 일도 있었다. 일종의 화가 자신의 자존심을 멍텅구리 발주자 모르게 그려 넣어 버렸다. 괴테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림을 잘 모르는 나 같이 검은 눈을 가진 이가 어떻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겠는가? 오 감사합니다, 괴테 씨!

그림에 대한 그의 평가는 볼로냐 여행 내내 이어졌다. 어느 그림에서나 보이는 해부 장면, 형틀, 피부 벗기는 장소, 이런 것들로부터 탈출하고자 벌거벗은 인물이나 아름다운 구경꾼 여자라든지 종교적인 주인공들을 마네킹처럼 대우해 버린 화가들의 처지를 고발하기도 했다. 아, 무엇이든지 목적 지향적이 되면 하수인이 되어 버리는 것은 동과 서가 닮았나 보다.

일요일 오후 도로를 가로막은 채 음악회가 펼쳐진다. 음악에 맞춘 춤꾼들의 한바탕 정열의 시간.

◇특색 분명한 붉은 도시

볼로냐를 일컬어 뚱보의 도시, 박사 도시, 붉은 도시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뚱보 도시라는 말은 억지로 붙인 것 같다. 음식이 그만큼 탁월하다는 것인데 그것은 맞지만 뚱보가 많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대부분 채식주의자라 살이 찐 사람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뚱보들은 서유럽이나 북유럽 등지에서 온 사람들일 게다. 볼로냐 사람들은 탁월한 외모를 지녔다.

붉은 도시라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도시들에 비해 이 도시의 건축물 빛깔은 붉은색 계열인 오렌지나 핑크빛 계통의 건물이 대부분이다. 햇빛을 받을 때 건물에서 핑크빛 파스텔 톤이 강하게 배어 나왔다. 오랜 진보 성향의 정치 역사를 말한 것일 수 있다. 그만큼 세상 흐름과는 다르게 살아왔다는 것 또는 나만의 생각, 가치를 고수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시넬리 탑에서 내려다 본 볼로냐 시가지.

오랜 역사를 지닌 볼로냐 대학이라는 확고부동한 정신적 지주가 있어서인지 산 페드로니오 대성당은 기존에 봐 왔던 성당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외벽은 다른 치장 없이 그냥 밋밋한 회색 톤의 벽돌로 마감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광장에서였다. 분수대나 동상 하나 정도는 세울 수 있었겠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뻥 뚫려 있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였다.

나는 그 광장 한편 계단에 앉아 홀로 행복에 젖어들었다. 고맙기까지 했다. 이런 곳이 있다니. 볼로냐였기 때문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냥 되는대로 붙이고 세우고 할 도시는 아니기 때문이다. 광장에서는 그동안 여정에 따라붙어 다녔던 피로가 녹아나고 치유가 되었다.

두 개의 탑으로도 불리는 아시넬리 탑과 가리젠타 탑은 이 도시의 또 다른 상징이다. 도시 어디든 보이는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탑의 높이도 각각 다르지만 기울기도 약간씩 차이가 있어 위험하게 겹쳐져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낮은 탑은 기울기가 크고 높은 탑은 기울기가 작다. 이 아찔한 교차 감이 예사롭지 않다.

처음에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요새로 활용되다가 후에는 하나의 풍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결국에는 가문의 명예와 세 과시용으로 탑을 세웠다. 누구나 탑을 쌓게 되자 평범한 것을 배격하는 이들의 습성이 일부러 탑에 기울기를 준 것이다. 볼로냐 사람다운 생각 아닌가?

포르티코(열주랑·列柱廊)는 그 유명한 볼로냐 대학의 강의실 역할을 했었다. 변변한 강의실이 없었던 볼로냐 대학을 위해 시 정부가 포르티코를 만들었다고 하니 과연 대학의 도시답다. 볼로냐 대학이 지금과 같은 자체 건물을 갖게 된 것은 1803년경이었다. 식상한 것들에 눈 돌리지 않는 그들, 볼로냐 대학이 머리로 가르쳐 준 것을 회랑이 발과 가슴으로 되뇌어 주었다.

볼로냐의 세계 최장 포르티고(열주랑). 총길이가 38㎞라 한다.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비워진 광장, 아무 장식도 없는 성 페드로니아 대성당, 기울어진 두 개의 탑, 핑크빛 빛깔의 도시, 진리의 화두 볼로냐 대학, 세계 최장의 포르티코, 작은 마트 하나까지 차지하는 협동조합, 일종의 공통분모가 있음이 틀림없다.

이상과 현실이 번갈아 나타나는 볼로냐, 산 루카 성모마리아 대성당 산마루에서 본 아펜니노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뻗어 내려 볼로냐를 동쪽에 두고 아래로 치닫기 시작했다. 북쪽에는 티롤산맥이, 동쪽으로는 아드리아해가 아른거린다. 마치 이상과 현실이 서로 넘나들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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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시민기자 조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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