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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인]박장식 창원 푸른요양병원 이사장

잘 나가던 경찰서장이 경영자 된 까닭

입력 : 2018-09-03 16:22:37 월     노출 : 2018-09-03 16:42:00 월
남석형 기자 nam@idomin.com

그를 처음 본 건 2015년 9월께였다. 그는 당시 진해경찰서장이었다. 3년 지난 지금, 그는 병원 이사장으로 인생 2막을 펼치고 있다. 23년간 열정을 쏟은 경찰 공무원직을 뒤로하고, 병원 경영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박장식(47) 푸른요양병원 이사장이다. 이야기 나누는 초반에는 무의식적으로 '서장'이라는 호칭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곧 '이사장'이라는 말에 익숙해졌다.

아버지 이어 병원 본격적으로 이끌다

Q.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부터 병원을 맡게 된 것입니까?

"이제 두 달가량 됐네요. 지난 6월 20일 경찰에서 퇴임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푸른요양병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Q. 이것저것 파악하느라 아직 정신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새로운 공부를 해야 하고, 병원 시스템을 좀 더 안착시키기 위한 연구·분석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연세대 경영대학원에 4학기째 다니고 있습니다. 이때 나름대로 미리 구상한 것들을 하나씩 집행해 나가고 있고요. 대외 활동도 부지런히 하고 있습니다. 틈날 때마다 다른 병원 관계자들을 만나 이쪽 분야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푸른요양병원은 창원컨벤션센터 옆 두대공원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의료법인 창아의료재단을 통해 지난 2008년 3월 31일 '푸른노인전문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그러다 2016년 4월 25일 신관 개관과 함께 '푸른요양병원'으로 이름도 바뀌었다. 현재 요양뿐만 아니라 재활·암·투석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병원 설립자는 박장식 현 이사장 아버지인 박종길(77) 씨다. 박 씨는 설립 이후 10년가량 이사장으로 병원을 이끌다 현재는 한 발짝 물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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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장식 창원 푸른요양병원 이사장. / 박일호 기자

Q. 푸른요양병원은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습니까?

"의료산업은 경영을 잘하기만 하면 크게 성장시킬 수 있고, 그 자체만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큽니다. 특히 봉사할 기회도 좀 더 많고요. 이에 아버님이 토지를 마련하셨고, 가족이 함께 뜻을 모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Q. 홈페이지에 '요양을 넘어 암·투석·재활까지'라는 안내 문구가 있던데요, 정확히 어떠한 성격의 병원인가요?

"급성기 병원에서 장기적으로 있기 어려운 분들이 2차 치료·재활을 위해 찾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암센터·인공신장센터, 그리고 특히 재활치료센터를 핵심 브랜드로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기존 본관 350평에 이어 신관 400평 규모 재활센터를 오픈했습니다. 재활 환자 처지에서 보면 일반 병원이 주말에 쉬는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죠. 공급자 중심 마인드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분들이 주말에도 치료할 수 있도록 365일 재활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재활만 놓고 보면 대학병원급 시설·장비·의료진을 두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현재 병원 전체적으로는 전문의 16명을 두고 있고, 종사자 400명 넘는 규모입니다."

Q. '푸른'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나요?

"작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죠. 우리 병원은 도심에 있으면서도 대상공원이라는 푸른 자연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활력·생명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푸른'을 넣게 되었습니다."

Q. 병원 입구에 '국가보훈처 지정 병원'이라는 문구를 봤습니다.

"아버님이 월남전 참전 용사이십니다. 당시 해병대 수색 장교로 소대를 이끌다 베트남 한 대대에 포위됐는데, 무전을 통한 폭격 등으로 궤멸했다는 일화를 들었습니다. 당시 전투에 지덕칠 중사도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교전하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현재 그분 동상이 진해기지사령부 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현재 보훈처 산하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회장직을 맡고 계시는 등 보훈단체 봉사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십니다. 그러다 보니 국가보훈처 지정 병원과도 연결됐고요."

Q. 올해 밀양세종병원 화재 사건으로 병원, 특히 요양병원 안전 문제가 화두로 떠올라 있습니다. 이곳은 어떻습니까?

"요양병원 중에는 도심 상가에 자리한 곳도 많습니다. 그런 곳은 탈출구, 비상 승강기 등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희는 내세울 만합니다. 단독건물이고, 비상 출구를 여럿 두고 있는 등 방재시스템에서 그 어느 곳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창원소방본부에서 모범사례로 우리 병원을 소개하고 있고요."

경찰 입문 이후 총경까지 승승장구

박장식 이사장은 마산 출생으로 마산합포초-양덕중-마산고를 졸업했다. 그리고 1991년 경찰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Q. 제가 이사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은 '부드럽고 스마트하다' 정도로 요약됩니다. 어릴 적 모습은 '공부 잘하는 부잣집 아들'이었을 것 같은데요….

"하하하, 그런가요? 3형제 중 장남입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운동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씨름·투포환 대회에서 1등도 했고, 축구 대회에서 득점상도 받았습니다. 실제로 정식 축구부 생활도 했습니다. 하지만 집안 반대가 심해서 선수 생활을 길게 이어가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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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마산동부경찰서 서장 시절의 박장식 이사장. 사진은 창원문화재단과 마산동부경찰서 간 문화예술 공연 지원 협약식을 하는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Q. 경찰대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습니까?

"어릴 적 스스로 사업가적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쪽으로 관심도 많았습니다. 공부도 곧잘 했습니다. 당시에는 공부 좀 하면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저도 그쪽을 염두에 두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과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고3 때 아버지가 경찰대를 추천하시면서 원서까지 직접 들고 오셨습니다. 저도 생각해 보니 막연히 멋있게 보이는 측면도 있어 시험을 쳤는데 합격한 거죠. 당시 우리 학교 재학생·재수생 6명이 지원했는데, 저를 제외한 5명은 문과였습니다. 이과인 저만 합격한 거죠. 그런 걸 보면 운명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Q. 경찰대학 졸업 후 1995년 정식 간부로 경찰에 입문했는데, 본인과 잘 맞았습니까?

"저는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활발하면서 진취적인 쪽입니다. 경찰은 전반적으로 보수성을 띠고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성향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셈입니다. 다만 저는 경찰 내에서 단순한 업무보다는 새롭고 독특한 분야에 많은 관심을 뒀습니다."

그는 경찰청 국제형사계, 인터폴 미주 담당, 미국 대사관 담당, 인터폴 한국지부 근무, 경찰청 정보국, 그리고 2008년 필리핀 대사관 영사, 2011년 행안부 치안정책관 등을 거쳤다.

Q. 본인 말대로 이력이 독특합니다. 기억에 남는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대학 시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경정 계급 때 필리핀 대사관 영사로 파견 갔습니다. 재외국민보호를 목적으로 현지 사건·사고 때 지원하는 업무죠. 당시 필리핀 납치 조직에 감금됐다가 탈출한 이가 대사관으로 찾아왔어요. 조직을 추적해 보니, 한때 국내서도 널리 알려졌던 '필리핀 한국인 관광객 연쇄 납치 살인' 일당 6명이었습니다. 사실 영사는 필리핀 당국에 사건을 통보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필리핀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이에 필리핀 경찰청 납치전담팀, 추방 담당 국장, 구청장 등과 계속 공조했습니다. 이들은 평소 친분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아요. 이럴 때를 대비해 미리 교분을 쌓아뒀던 게 큰 도움이 됐죠. 결국 제가 영사로 있을 때 4명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2명도 이후 몇 년 지나 체포됐고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의지를 두고 무에서 유를 창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너무 힘든 부분도 많았습니다. 원래 3년 예정으로 갔는데 2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마음속 품어왔던 경영인의 삶 시작

그는 이후 2014년 7월 경남경찰청 청문감사관을 거쳐 2015년 3월 우리나라 나이 44살에 총경으로 승진했다. 2015년 7월 전국 서장 가운데 최연소인 진해경찰서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마산동부경찰서장을 끝으로 지난 6월 퇴임했다.

Q. 경찰의 꽃인 총경에 올랐고, 승진도 남들보다 빨랐습니다. 경찰 조직에서 승승장구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 왜 경찰 일을 그만뒀나요?

"사실 정년까지 계속하겠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고향에서 경찰서장을 하고, 또 기회가 된다면 지방청장까지 해보고 50살 전후 퇴직하고픈 생각이었습니다. 어릴 적 마음속에 자리했던 경영자의 삶을 계속 꿈꿔왔습니다. 집안 장남으로서 병원을 맡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의무감도 계속 있었고요. 의료산업은 경영에 따라 성장 여부도 크게 갈립니다. 제 진취적인 성격과 맞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 보고 싶었죠. 고향에서 진해경찰서·마산동부경찰서 서장으로 명예로운 생활을 했다고 생각했고, 적합한 시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23년간의 공직을 떠나는 것이기에 아쉬운 마음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이 더 컸습니다."

Q. 큰 틀에서 어릴 적 생각했던 의대 진학, 경영에 대한 꿈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생각해보면 돌고 돌아서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일 벌이고 성과로 이어지는 걸 좋아하는 저로서는 지금 에너지가 넘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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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장식 창원 푸른요양병원 이사장. / 박일호 기자

Q.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이사장과 의사들 간 갈등이 자주 등장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까?

"요즘 JTBC 드라마 <라이프>가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저도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병원은 특히 전문가 집단이 모인 곳입니다. 의사뿐만 아니라 물리치료사, 의료기사, 요양보호사 등 전문 자격을 두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렇다 보니 자존감도 상당히 높습니다. 이 때문에 병원 내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일방의 주장이 아닌, 근거를 통한 합리적 견해로 최선의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공직 때도 불필요한 형식을 싫어했고, 의미 있고 실질적인 일을 만들어내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Q. 그럼에도 경영적인 측면, 반대로 환자 생명을 다루는 의료 본연의 문제, 이 두 부분이 현실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급성기 병원은 아니기에 그런 급박한 부담감은 덜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사장으로서 경영적 측면을, 의사는 환자 중심 사고를 더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경영이 지속해서 안정되어야만 환자분들께 더 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궁극적으로 같다고 봅니다. 즉 의사는 개인 환자에게 잘하고, 경영은 이러한 의료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도록 각각 집중하는 것이죠."

이와 관련해 황인호 기획이사는 "직원들도 처음에는 경찰 공직에 오래 있던 분이라 자기 생각을 강하게 어필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뒀습니다. 하지만 합당한 의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직원들도 애초와 다르게 바라보는 분위기입니다"라고 귀띔했다.

Q. 이야기 내내 관통하는 단어가 '경영'인 것 같습니다. 집안 윗대부터 영향받은 부분이 있나요?

"어머니가 중학교 교사로 지내다 어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이때 경제적 관리를 잘하셔서 저희 자식들이 비교적 윤택하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러한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 고2 아들, 초등 5학년 딸을 두고 있는데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겠지만, 제 영향을 받는다면 훗날 사업 쪽으로 관심을 둘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Q. 앞으로 병원 이사장으로서 어떠한 그림을 그리고 있나요?

"우리 병원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자연공원을 끼고 있고, 신관 증축으로 내부 시설은 호텔급 못지않다고 자부합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온 분들은 지금도 최고 요양병원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법인 안정화에도 더 신경 쓰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신규병원 설립 혹은 인수 등 여러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의료 봉사활동도 더 적극적으로 할 계획이고요. 이를 통해 전국 요양산업에서 선두주자가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Q. 워낙 하고픈 게 많은 것 같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게 있나요?

"제가 현재 창원시 진해구에 살고 있습니다. 진해에서 경찰서장도 했고, 아내 본적도 진해입니다. 제 고향이 마산이기는 하지만, 진해 정서와 더 잘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해는 아름답고 쾌적하며, 발전 가능성도 크고요. 앞으로 진해를 위해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다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해볼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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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석형 기자

    • 남석형 기자
  • 경제부 기자입니다. 부동산·금융·건축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제보뿐만 아니라, 주변 따듯한 이야기도 늘 환영입니다. 휴대전화 010-3597-1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