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일본에 갔을 때 인상 깊었던 풍경이 있다. 직장 동료로 추정되는 남성 두 명이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재떨이가 설치된 흡연구역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담배를 피웠다. 둘은 각자 재킷 안에서 은색 작은 케이스(휴대용 재떨이)를 꺼냈고 이내 자신들이 피운 담배꽁초를 집어넣은 뒤 자리를 떴다. 바닥에 침 한 번 뱉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재떨이가 설치돼 있는 곳이었는데 구태여 각자 소지한 휴대용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넣어 가는 그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유난히 깨끗한 일본 길거리는 이 작은 배려로 시작된 것이리라.늦은 퇴근길, 맞
결혼식을 준비하며 다종다양한 성차별과 무례함을 보거나 겪었지만 그 중 가장 황당했던 건 '혼인 서약'이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라 혼인 서약을 낭독하기로 했는데 예식장에서 예시라고 보내준 것이 가관이었다. '아침밥은 꼭 챙겨주겠습니다', '운동을 꾸준히 하여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겠습니다', '아빠 닮은 붕어빵을 만들어 황금 잉어로 키워보겠습니다'. 이런 문구가 조선시대도 아니고 2024년에 신부가 신랑에게 하는 약속의 예시로 돌아다니고 있었다.참고로 신랑이 신부에게 하는 약속은 '하루 한 번 이상 애정 표현을 하겠습니다', '아내의
짝꿍과 내년 1월 결혼한다. 난 오래전부터 결혼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전보다 작은 결혼식이 늘어나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 결혼 준비 과정은 기형적이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가 활성화된 요즘에는 브라이덜 샤워(bridal shower·결혼을 앞둔 신부를 축하하고자 여는 파티)라는 문화가 기본값이 됐다.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는 기회' 앞에 '진정한 축하'는 무색하다. 이런 고민으로 결혼식을 해야 하는지를 두고 부모님과 많이도 다퉜다. 하지만 난 애지중지 키운 자식을 '남들처럼'
출근하기 전 집안 전자제품 플러그를 뽑는다. 집을 비운 동안 사용하지 않는 인터넷 공유기, 텔레비전 셋톱박스도 포함이다. 냉장고처럼 전력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 것은 예외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내가 있는 공간 외에는 가급적 전등을 켜지 않는다. 날이 추워지면 내의를 입어 히터 사용량을 최소화한다. 입사 2년 차 때 '밀양 송전탑 사태'가 있었고 나는 그 특별판을 편집했다.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하고자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 사람들이 많은 고통을 받았다. "인간이 자신의 욕심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하는 에너지 문제 해결은 좋은 방법
뜨거웠던 올해 여름도 끝이 보인다. 우리 집 연필선인장은 여름이 되자 제 계절을 만끽하듯이 쑥쑥 자랐다. 하트아이비는 지난해도 그렇더니 올해도 맥을 못 췄다.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져 있는 날이 몇 번 반복되더니 결국 한 줄기가 말라죽었다. 지난해 겨울 식구로 맞은 아스파라거스는 우리 집에서 첫 여름을 보냈다. 빛을 많이 받아서일까 잎이 군데군데 노랗게 변하거나 타들어 갔다. 자리를 바꿔도 마찬가지여서 걱정이 깊어지던 때, 물을 주다가 새로운 줄기를 발견했다. 곧게 뻗은 줄기에선 부드러운 잎이 나올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
오후 8시가 넘은 시각이면 보통 퇴근을 한다. 창원NC파크까지는 느린 걸음으로 넉넉잡아 5분.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우리 회사 나름의 복지라면 복지다. 시계가 30분을 가리키면 매표소로 향한다. "외야 하나요." 경기 시작 두 시간 후 입장하면 내야는 5000원, 외야는 2000원이다. 부가세는 별도. 입장하자마자 먹을거리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산다. 저녁식사인 셈이다. 자리에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친다. "아주! 나이스~ 누구? 김주원!" 익숙한 응원가가 흘러나오고 나도 어느새 응원단이 된다. NC를 목이 터져라 응
금요일 저녁 집 근처 대학가로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부산에서 유명한 일본식 라면 전문점 분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가게에 가니 앞에 네 팀이나 더 기다리고 있단다. 대기 명단에 이름을 써놓고 주변을 조금 돌아다녔더니 자리가 났으니 얼른 오라는 연락이 왔다. 저녁을 먹고 맥주도 한 잔 마시러 간다. 역시나 얼마 전에 새로 생긴 가게가 목적지다. 자리에 앉아 맥주를 기다리고 있으니 손님이 계속 들어온다. 가족과, 친구와, 삼삼오오. 나도 시원한 생맥주를 앞에 두고 한참 수다를 떨었다. 가게 밖으로 나오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거
엄마, 저 감은 왜 안 따는 거야? 저건 까치 같은 새들이 먹으라고 남겨둔 거야. 어려서 연례행사처럼 수개월씩 시골에서 지냈다. 뒷산에서 놀다가 남겨둔 감을 새가 연신 쪼아 먹는 걸 발견하고는 감을 다 따지 않는 그 이유를 어렴풋하게 알았다.퇴근길 일주일에 두어 번 동네 슈퍼마켓에 들러 생수, 맥주, 라면, 소분된 방울토마토 따위를 산다. 밤늦은 시간까지 동네를 밝히는 슈퍼마켓. 급히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어느 날 덜컥 이곳이 문 닫으면 어쩌나 싶다. 밤에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다음날 아침 집 앞에 최저가
퇴근길 밤거리가 조용하다.음식점·술집이 모여 있는 회사 근처 거리도 마찬가지다. 건물 몇 군데에는 수개월 전부터 임차인을 구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불을 밝힌 가게도, 거리를 서성이는 이들도 확연히 줄었다. 드문드문 눈에 띄는 이들은 귀가를 서두른다. 겨우 오후 8시를 넘은 시각, 예전 같았으면 새벽 한두 시에 보던 풍경이 펼쳐진다. 일찍 이 거리에 찾아오는 정적이 아직 낯설다.코로나 이전에는 나도 이 거리에서 자주 삼삼오오 모여 새벽까지 먹고 마시고 떠들었으니까. 퇴근 후 시끌벅적한 술자리보다 집에 가서 편히 쉬는 삶이 익숙해진
축구와 달리기를 좋아하는 그는 군대에서 우연히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등록을 했다.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서 처음 전화가 온 건 2009년. 그는 큰 고민하지 않고 말초혈 조혈모세포 기증을 했다. 훗날 기증을 받은 이가 자녀를 둔 40대 여성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협회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얼떨떨하면서도 고민이 됐다. 2회 차에는 전신 마취가 필요한 골수 기증을 해야 했고 서울에도 가야 했다. 혹시 모를 부작용도 걱정됐다. 하지만 그는 기증 받으려는 이가 초등학생도 되지 않은 어린이라는 사실을 듣고 기꺼이 홀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던 나는 마산 부모님 집을 오고 갈 때 고속버스를 곧잘 이용했다. 버스가 출발하거나 도착할 때 어김없이 보이던 신문사 입간판 하나가 있었다. 그 입간판에 유난히 호기심이 생긴 건 마지막 학기가 끝날 무렵이었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시기라 핸드폰을 꺼내 이 신문사 이름을 검색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이 신문사가 2011년 당시 방송광고판매제도 법안(일명 미디어렙) 제정을 촉구하는 언론노조 총파업에 동참하며 신문을 전면 휴간했다는 점이다. 광우병 촛불시위를 계기로 광장에 들어섰던 나는 고향에 이런 언론사가
얼마 전 박정연 문화체육부 기자와 함께 '이달의 기사상'을 받았다. 시민사회부 시절 받은 것까지 포함하면 네 번째다. 내가 이달의 기사상을 받을 때마다 형부의 아버지, 그러니까 사돈께서 언니를 통해 신문에서 잘 봤노라고 연락을 주신다. 직접 찍은 지면 사진을 곁들여서. 네 번 다 그랬다.이달의 기사상 수상 사실은 지면평가위원회 회의 내용과 더불어 신문에 짧게 소개된다. 이달에는 20개 지면 중 15면에 소개됐다. 신문을 꼼꼼하게 보지 않으면 잘 알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 점이 그가 가까운 사람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날 정신 차리게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창원 마산고속버스터미널 앞 시내버스 정류장. 이곳은 퇴근길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장이다.버스가 언제 오나 싶어 정류장에 설치된 버스정보시스템 화면을 보려는데 느닷없이 욕이 날아든다. 6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때릴 듯이 위협하며 내게 욕을 한다. 난 무슨 일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도망쳤다. 정류장 밖까지 따라나왔던 남성은 내가 달아나자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정류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숨을 고르며 살펴보니 그가 술에 취한 듯 몸을 가누질 못한다.이후로도 이 남성은 정류장에 오는 모든 여성에게
화장대에 앉는다. 로션을 바른 얼굴 위에 자외선 차단제를 가볍게 펴 바르고 파우더를 이마에만 눌러준다. 다음은 눈썹. 모나리자가 울고 갈 모량이므로 이 단계에 가장 정성을 쏟는다. 눈썹이 생겼다면 립밤을 바르고 마무리한다. 이 모든 걸 하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 바뀐 삶이다. 마스크로 온종일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으니 어떤 날은 로션만 바르고 출근하기도 했다. 메이크업베이스 위에 파운데이션 바르고 파우더 바르고 속눈썹 올리고 아이라인 그리고 마스카라 바르고 아이섀도 칠하고…. 아무튼 경극 배우 못지않은 얼굴을
참 재밌게 일했다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날이 있다. 지난해 마산국화전시회 특별판을 편집할 때가 그랬다. 임정애 선배, 김연수 기자와 수다 떨듯 아이디어를 낸 게 시작이었다. 차를 타고 축제장을 둘러봐야하니 기념사진 찍기도 힘들겠다, 지면을 활용해 사진을 찍으면?영화 인증샷 이벤트가 떠올랐다. 국화 한 다발을 사 온 뒤 사진을 찍고 지면에 실었다. 셋 다 흥이 나서 일했더니 어느새 지면 제작이 끝나 있었다. 시민 반응이 기대만큼 뜨겁진 않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재밌게 일한 기억이 쌓여 일을 하는 힘이 된다는 걸 안다
재작년 스토킹 피해를 당했다. 이러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해도 가해자는 멈추지 않았다. 연락처를 차단하면 다른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를 받지 않자 가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고 난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로 연락은 잠잠해졌다.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누군가가 날 길에서 칼로 찌르지 않을지, 덜컥 집으로 찾아오지 않을지, 내 주변 사람들을 해코지하지 않을지 불안하다. 얼마 전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태현의 범행 방법을 보고 가정용 문서 파쇄기를 샀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매일 아침 샐러드 한 접시를 먹는다. 지난해 가을부터 아침 식단을 빵으로 바꾸고 자연스럽게 샐러드도 먹게 됐다. 채소는 한 종류만 먹으면 금방 물려서 그때그때 다종다양하게 준비한다. 그래서 장을 보는 것부터 발품이 많이 든다. 전보다 일찍 일어나 재료를 씻고 손질해야 해서 손품도 든다.분주하게 움직여 완성한 작은 한 접시. 채소를 아삭아삭 씹다 보면 오늘은 어제보다 건강해진 것 같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코로나로 보고 싶은 이를 만나는 것도,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지금. 이전보다 지금이 더 건강하다고 느끼
경남도교육청 교육연수원(원장 박 줄)은 11일 전 직원이 참여한 가운데 청렴 캠페인을 했다. 이날 오전 직원들은 교육연수원이 위치한 의창구 사림동 일대를 돌며 지역민을 대상으로 청렴홍보활동을 하고, 도로와 하천변 쓰레기를 수거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창신고 학생 7명이 22일 를 견학했다. 이날 학생들은 신문 제작 과정을 살펴봤다. 견학에 참여한 황진욱(17) 군은 "집과 가까운 곳에 신문사가 있다니 신기하다"며 "약한자의 힘이라는 사시가 멋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1년 1월 11일 김대중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서 언론개혁 강조, 기자실 폐쇄 문제로 이어져. 언론개혁국민행동 경남본부, '기자실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9.25). ●1월 17일 '미대사관앞 1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