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절시켜 죽이면 안들킨다” 영화심취 죄책감없이 범행

영화·TV프로그램 등이 청소년의 모방심리를 통해 각종 범죄를 유발시키고 있다는 문제는 어제 오늘 지적된 것이 아니지만 그 수위는 날로 위험해지고 있다.
한나양을 살해한 고교생이 영화에서 사람을 기절시켜야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진술을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다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목을 조르고 성폭행을 한 박군의 수법은 한나양 뿐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의 목숨도 앗아갈 뻔했다”며 “한 여중생은 얼마나 목이 조였는지 목은 물론이고 눈 주위가 뻘개지고 눈동자가 튀어나오는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군이 영화에서 범인이 쉽게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성욕을 충족시키는 모습에 심취해 자신도 큰 죄책감없이 그러한 수법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청소년들의 모방범죄는 전국적으로도 붐을 타고 있을 정도다. 지난달 30일 부산에서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나이트클럽에서 인분을 뿌린 혐의(폭력행위 등)로 20대 2명이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최근 방영중인 SBS드라마 〈야인시대〉를 모방, 인분을 담은 비닐봉투를 무대 위로 던지며 소란을 피운 혐의를 받고 있으며, 폭력조직간의 세력다툼일 가능성에 대해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에 앞서 같은달 16일 광주시 오치동의 한 중학교에서 〈야인시대〉를 보고 패싸움을 벌인 혐의(폭력행위 등)로 경찰에 검거된 중학생 15명은 “야인시대처럼 멋지게 맞싸우자”며 심야대결을 신청, 친구들과 합세해 각목을 휘두르는 패싸움을 했다.지난 2001년 10월께 한 고교생이 자신을 괴롭힌 반 친구를 수업중에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영화 〈친구〉를 40여 차례나 보면서 용기를 내 범행했다”고 진술한 사건이나, 지난 2000년 10월께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모방해 주유소 직원을 때린 뒤 금품을 턴 10대 4명이 “영화를 보고 나서 똑같이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진술한 것도 등이 모방심리에서 발생한 범죄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특히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폭력물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나쁜 행동들이 범죄에 해당됨에도 불구하고 정의나 의리를 위한다는 명분아래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며 “모방범죄가 잇따르고 있음에도 매체의 악영향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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