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지역 이야기 듬뿍 담은 대하소설 〈백성〉
전21권, 200자 원고지 3만 2000장 분량
"내가 아니면 누가 쓰겠냐"는 소명감으로 인고한 20여 년

지난해 10월 대하소설 <백성>을 낸 김동민(68) 소설가는 지난 20여 년간 강박적일 정도로 이야기 속에 묻혀 살았다. 그는 한순간도 이야기를 떨칠 수 없었다. 진주 남강을 걸을 때면 그곳에 있던 바위가 등장인물 얼굴처럼 보였다. 낮 동안 집필하며 말끔히 풀지 못한 장면은 꿈속에까지 나왔다. 탈고 후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어디 앉았다가도 다음 이야기가 생각나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잠시 뒤에서야 '아, 탈고했지' 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대하소설 <백성>은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200자 원고지 3만 2000장 분량으로 전 21권에 이른다. 박경리 선생이 쓴 대하소설 <토지>보다 더 길다. 지난 30일 작가를 만나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지난 30일 진주시 신안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동민 작가./백솔빈 기자
지난 30일 진주시 신안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동민 작가. 그는 대하소설 〈백성〉을 썼다./백솔빈 기자

◇온 세월이 담긴 소설 = 글을 쓴 기간은 20년 정도 되지만, 사실상 작가가 살아온 세월이 전부 소설에 녹아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설에 활용된 소재가 어릴 때부터 작가 주위를 늘 맴돌았던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린 그에게 마을 어른들은 저녁이 되면 남강에 머리 없는 귀신이 나온다고 겁을 줬다. 그럴 때 작가는 어떤 사람이, 왜 머리없는 귀신이 됐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머리 없는 귀신'은 1866년 천주교 병인박해로 처형돼 묻힌 정찬문(영세명 안토니오)이란 인물이었다. 또, 친구들과 무릎 장단을 치며 장난스레 불렀던 한 노래도 기억했다. 훗날 그 노래가 '이거리저거리각거리', 즉 '언가(諺歌)'란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노래는 조선 후기 진주 민주 항쟁을 이끈 유계춘이 항쟁을 준비하며 퍼뜨린 것이었다.

작가는 어릴 적 들은 진주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계속 왜 그랬을까, 사람들은 왜 그리 살았을까 질문했다. 엉켜있던 실마리가 하나둘 풀리기 시작하면 신이 났다. 그렇게 귀한 진주 이야기들을 묵혀둘 순 없었기에 이야기로 풀어 쓰기 시작했다.

"사실 하루에 원고지 300장 분량을 썼던 것도 제가 신나서 그랬습니다. 어릴 때부터 궁금했던 이야기에 얽힌 사연을 실제로 알게 됐으니까요. 이런 지역 이야기를 서울 사람이 쓰겠습니까, 일본·미국 사람이 쓰겠습니까? 아니면 다음 세대가 쓰겠습니까? 지금 이 시대에 내가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소명이 생겨 기록하겠다 결심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대하소설 <백성>에는 알려지지 않은 진주 지역 이야기들이 많이 담겼다. 기생 문화, 소싸움 등 진주 지역 문화를 활용하고, 진주어를 맛깔나게 살린 것도 특징이다. 소설을 출간한 출판사 문이당 임성규 대표도 이런 점들을 가치 있게 봤다. 처음에는 엄청난 분량 탓에 출간을 망설였다고 한다. 

"어릴 때 친구들과 불렀던 언가에 얽힌 배경 이야기를 이 소설을 통해 알게 됐어요. 알려지지 않은 진주 이야기, 진주 지역 특색이 가득 담긴 문장들은 한국 문학사에서도 의미 있겠다 싶어 발행을 결정했습니다."

대하소설 〈백성〉 제1권 표지./갈무리
대하소설 〈백성〉 제1권 표지./갈무리

◇ 우리는 모두 백성 = 진주에서 출발하지만 이야기는 단순히 진주에만 그치지 않는다. 1862년 철종 13년 때 일어난 임술민란을 시작으로 1945년 해방 전까지 시대를 다루고 있다. 경상도를 중심으로 서울과 부산, 일본, 중국 만주·상하이, 러시아, 미국 등 다양한 배경 속에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등장인물만 400명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인물을 소설 무대에 올린 이유는 '백성'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백성이 피지배 계급인 민초나 민중으로 한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엔 왕도 백성이다. 그래서 소설 제목 '백성'은 인간 모두를 뜻한다. 작가는 소설 속 인물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을 독자들도 찾길 바랐다. 바로 '정'이다.

"사람들끼리 정을 나누면 살아갈 원동력을 찾습니다. 작품을 통해 '정'을 나누는 인생살이를 들여다봤으면 합니다."

결론적으로 대하소설 <백성>은 삶과 세상살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자 답을 찾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원고지 3만 2000장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백솔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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