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가 바란다] 우리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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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하) 이주민이 바란다

한국에 체류하는 이주민 비율은 국내 총인구의 4.1%입니다. 정부가 ‘외국인 주민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6년(54만 명) 이래 이주민 수는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2020년 11월 기준 210만 명으로 경남·부산지역 등록외국인은 20만여 명입니다. 사실상 지역도 ‘이민 사회’에 접어들었지만 이들을 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이주민들은 차별과 혐오를 종종 겪는다. 귀화해서 투표권까지 얻은 이들도 ‘이주민’ 꼬리표에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1대 국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이 문제를 풀고자 했다. 하지만 법안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폐기될 상황이다. 22대 국회는 이주민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룰 수 있을까? 대부분 유권자가 아닌 이주민에게 먼저 다가서는 후보나 정당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베트남과 중국에서 각각 이주한 티타오(왼쪽)·안정화 씨가 지난 6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베트남과 중국에서 각각 이주한 티타오(왼쪽)·안정화 씨가 지난 6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차별을 인정할 권리뿐 = 1998년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이주한 미얀마인 쁘띠린(50·가명) 씨에게는 투표권이 없다. 26년 한국 생활에서 ‘차별’은 그에게 가장 익숙한 개념이 됐다.

쁘띠린 씨는 미얀마에서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 이주를 결정했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입국 브로커에게 3500달러를 쥐여줬다. 경기도 수원과 부산 등을 돌며 생산직으로 일했다. 2001~2011년은 미등록 외국인으로 살았다. 늘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컸다. 버는 돈은 족족 미얀마 가족에게 보냈다.

직장에서는 일상적으로 욕설을 들었다. 술·담배 심부름도 일상이었다. 같은 일을 했지만 급여도 달랐다. 노동자를 지키는 법은 이주민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똑같이 일해도 우리는 한국 사람과 월급이 달랐어요. 급여차가 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어요. 월급을 받으면 그중 15만 원을 회사에 이탈 보증금으로 냈어요. 시간이 갈수록 금액이 커지니 도망도 못 쳤어요. 3년 넘게 일한 공장에서는 540만 원을 떼인 적도 있어요.”

쁘띠린 씨는 차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국에서 안전하게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믿음은 바뀌지 않았다.

베트남 출신 티타오 씨가 지난 6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베트남 출신 티타오 씨가 지난 6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대물림되는 차별 = 베트남 출신 티타오(49·창원시 의창구) 씨는 2004년 한국으로 이주했다. 베트남에 있던 옷 공장에서 경리로 일하면서 같은 직장 부장이던 한국인 남편을 만났다. 가정을 이뤄 창원에 살림을 차리고 2008년 귀화했다. 베트남에서도 부족할 게 없는 삶이었고 단지 결혼해 거주지를 한국으로 옮겼을 뿐인데 국적이 차별 근거가 됐다.

“직장에서 남편을 만났지만 동네 사람들이 얼마 받고 결혼했느냐고 묻거나 수고비를 줄 테니 여자 하나 데려오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아픔도 많았고 상처도 받았지만 가족을 위해 버텼지요.”

 

직장선 같은 일 해도 낮은 임금

결혼 이주에는 "얼마 받고 왔냐"

아이도 차별 상처로 한국 떠나

중국 옌볜에서 살다가 23년 전 입국한 안정화(53·창원시 의창구) 씨도 차별에 익숙하다. 중학교 수학 교사로 일하다가 결혼을 계기로 이주한 그는 창원지역에서 학습지 수학 강사를 비롯해 중국어학원을 운영하며 두 자녀를 키웠다.

일상적 차별은 대물림됐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는 일이 허다했다. 집까지 몰려와서 중국인이라며 놀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안 씨는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보이려고 일부러 자녀 학교에서 방과후 강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따돌림 우려 때문에 자녀를 2010년 중국에 있는 학교로 보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차별받는 얘기를 들으면 부모로서는 억장이 무너지잖아요. 특히 그때 왕따 이슈가 많아질 때라 더 그랬는데 세월이 지나도 차별이 사라지지 않고 있어요. 이게 현실이에요.“

중국 출신 안정화 씨가 지난 6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중국 출신 안정화 씨가 지난 6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이주민 차별금지 법안 절실 = 이주민들은 차별금지법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만큼 마땅한 권리를 보장받는 게 당연하다.

21대 국회에는 장혜영(정의당·비례) 국회의원은 2020년 6월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등 어떤 이유로도 상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 법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티타오 씨는 “약자를 향한 차별을 막을 수 있는 논의에 정치권이 나서지 않고 있다”며 “이주민을 특별하게 대접해달라는 게 아니라 어울려 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대우받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쁘띠린 씨는 ”한국 정치권은 이주민을 이용해 경제를 살릴 생각은 하면서 이주민 권리 챙기기에는 소홀하다”며 “이주민은 한국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끝>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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