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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 통하는 모든 길에 수천 년 역사가 말을 건다

[그리스 로마 유적 유물 여행] (8) 소나무와 분수의 도시, 로마
경부고속도로 모태된 도로체계
콜로세움·공회장 등 유적 즐비
로마제국 유산 우산 소나무 눈길
<로마의 휴일>트레비 분수 명소

2017년 05월 22일(월)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이제 그리스 로마 유적 유물 여행의 마지막 여정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로마 시내로 가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아우렐리안 성벽이 감싼 옛 로마 제국의 중심으로 가는 거지요. 성벽 안 도심 전체가 세계유네스코 문화재입니다. 관광버스가 들어갈 때 돈도 내야 한다는군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는 지금 그 길 위에 있습니다. 로마인들은 길을 잘 만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는 동쪽으로 소아시아, 서쪽으로 스페인과 영국, 북쪽으로 독일 남부, 남쪽으로 북아프리카까지 이른 거대한 제국이었습니다. 로마 군대가 정복지를 확장하러 떠날 때는 꼭 길을 닦으면서 갔습니다. 로마 제국 어디서든 이 길을 거꾸로 걸으면 바로 로마에 도착하게 됩니다.

로마를 둘러싼 아우렐리안 성벽을 지나 고대 로마 제국의 흔적이 남은 시내로 들어간다.

로마의 길, 경부고속도로에 이르다

지금의 이탈리아인들도 길을 닦는 유전자를 물려받았겠지요.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 하면 바로 독일의 아우토반을 떠올릴 겁니다. 하지만, 근대적 개념의 유료 고속도로를 처음 만든 나라는 이탈리아입니다. 1920년대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와 바레세 지역을 60~70㎞ 정도 연결한 자동차용 고속도로입니다. 처음에는 마차도 다녔답니다. 그런데 말 때문에 자꾸 사고가 나니까 자동차만 다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현대적 의미의 고속도로 즉, 아우토스트라다(Autostrade)가 됩니다. 이걸 본뜬 것이 독일의 아우토반(Autobahn)입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를 상징하는 경부고속도로는 이탈리아 고속도로 체계를 따라 한 것이라는군요. 1960년까지 우리나라에는 고속도로라는 말 자체가 없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 파견한 간호사와 광산노동자를 위문하러 갔답니다. 그는 독일에서 고속도로를 처음 보고는 우리도 이런 걸 만들어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다지요. 독일과 이탈리아 방식이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는데, 우리나라와 지형이 비슷한 이탈리아의 것을 채택했답니다. 겹치지 않는 진출입로, 급커브나 급경사 배제 같은 방식이나 톨게이트 개념도 모두 이탈리아 고속도로에서 가져왔습니다. 그야말로 길을 만들던 로마 제국의 유산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진 셈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수천 년 내려온 로마 제국의 유산인 우산 소나무.

소나무가 로마의 상징이라고?

우리는 이제 로마 성벽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유명한 콜로세움도 둘러보고, 폐허처럼 남은 로마 공회장도 살펴봅니다. 그런데 유적 주변이나 도로변에 유독 소나무가 많습니다. 버섯모양으로 윗부분만 남게 깔끔하게 다듬어진 소나무들입니다. 일부러 다듬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원래 그런 모양이랍니다. 영어로 Stone Pine, 그러니까 돌 소나무란 겁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우산 소나무, 파라솔 소나무라고도 한다네요. 남부 유럽과 지중해 연안에서 흔히 보는 소나무입니다.

놀랍게도 이 소나무들이 바로 수천 년을 내려온 로마 제국의 유산이랍니다. 앞서 로마 제국 군대가 길을 닦으면서 정복 여행을 했다고 했지요. 길을 만들면서 양쪽으로 우산 소나무를 심었답니다. 지중해 지역은 햇볕이 아주 뜨겁습니다. 소나무를 심어놓으면 전쟁에 이기고 돌아올 때 시원한 그늘이 돼 준다고 하네요. 높이가 15m까지 자란다는군요. 도로 양편으로 건물 높이만큼이나 우뚝한 우산 소나무들은 아무리 봐도 독특하면서도 장엄한 풍경입니다. 과연 로마의 상징이라고 불릴 만하군요.

소나무에 이어 로마를 이르는 또 다른 수식어는 분수의 도시입니다. 로마가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가 도시 곳곳에 발달한 수도시설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안에서도 로마만큼 수도와 분수시설이 많은 곳이 없답니다. 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족이 로마로 쳐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도 수도와 분수를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빨리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지요. 이후 교황이 로마로 돌아와 실의에 빠진 로마 시민들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도 수도와 분수를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때 로마 시내 분수가 1000개가 넘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지금 가장 유명한 곳은 아마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일 겁니다. 물론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로마의 휴일>(1953) 때문이지요. 계단식으로 흐르는 물과 대리석 조각상으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롯데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 지하에 가면 모조품을 볼 수 있습니다.

트레비 분수? 삼거리 분수!

'트레비'라고 할 때 트레는 숫자 '3'을, 비는 비아(via)라고 해서 '길'을 뜻합니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삼거리 분수'가 되겠습니다. 원래 큰길 세 갈래가 교차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우리식으로 하면 육거리가 더 맞겠네요. 로마시대에는 연병장이 있던 곳이었고, 이후 처녀의 샘이라고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1730년 교황이 분수 제작 공모를 합니다. 피렌체 사람이 1등을 하지만, 로마인들이 자존심을 내세워 2등을 한 니콜라 살비란 사람이 설계한 것을 채택합니다. 1732년에 만들기 시작했지만, 30년이 지난 1762년에야 완공합니다. 심지어 살비는 완공되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트레비 분수. 분수의 도시 로마에서 가장 유명해 항상 인파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 분수는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 바로크양식을 대표하는 건축입니다. 실제로 보면 크기가 압도적입니다. 높이 25.9m, 너비 19.8m 거대한 분수대가 약 4층 높이의 건물 한쪽을 차지하고 서 있습니다. 가운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있고요, 양옆으로 풍요의 여신이, 그 아래 포세이돈의 두 아들 트리톤(반어 반인)이 말을 한 마리씩 끌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순한 말, 왼쪽은 화난 말입니다. 각각 잔잔한 바다와 요동치는 바다를 상징합니다. 놀랍게도 조각과 받침대를 포함한 전체 분수대가 대리석 한 조각으로 만든 거랍니다.

트레비 분수 앞은 인파로 가득합니다. 오드리 헵번이 그랬듯, 사람들이 왼쪽 어깨너머로 동전을 던집니다. 한 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되고, 두 번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세 번 던지면 그 사랑이 이뤄진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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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국장석 기자입니다. 경남의 산 등 공공 기획. 15면/20면 지역민 참여 보도, 제휴 뉴스. 가끔 자체 기획. 한국언론진흥재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업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