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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여행] (20) 창녕군 남지읍 골목

도로변, 읍내·신도시 느낌 공존
골목 들어서니 고즈넉한 분위기
오랜 삶 흔적 간직한 가게·주택
남지철교·신남지교 색 조화 눈길

2019년 02월 22일(금)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남지가 이렇게 컸나? 사실 좀 당황이 되네요.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스치듯 지나갔던 기억으로 가늠하기엔 세월이 많이 지났나 봅니다. 창녕군 남지읍은 예상보다 번화한 곳이로군요. 낙동강변 시골 읍내의 고즈넉하고 소소한 풍경을 찾아온 저로서는 넓은 도로변에서 쩝쩝 입맛을 다시는 중입니다. 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일단 거리를 천천히 걸어보기로 합니다.

▲ 남지읍에서 만난, 정겹게 낡은 간판이 있는 풍경.
남지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은 조금은 신도시 느낌이 나네요. 깔끔한 도로와 오랜 땅이 나란한 모습이 그렇습니다. 그래도 읍내는 읍내입니다. 아직 남은 옛 풍경들이 제법 보입니다. 남지성당도 그중 하나입니다. 지금 건물은 1987년에 세운 건데요, 원래는 1954년에 설립된 남지공소가 있던 자리입니다. 성당 중에 주임신부님이 계시는 곳을 본당, 그렇지 않으면 공소라고 합니다. 남지공소가 생긴 역사도 남다릅니다. 조선 말 천주교 박해를 피해 강을 따라 내려온 신자들이 남지 주변에 세 개의 공소를 차리고 복음을 전합니다. 이를 통합한 게 남지공소였죠. 남지성당에는 이런 역사를 함께한 오래된 종이 일종의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남지성당 옆 새 건물 종루에 달렸습니다만 지금은 쓰지 않는답니다.

남지성당 앞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조선 말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천주교 신자들만큼의 의지는 아니더라도 힘을 내서 고즈넉한 풍경들을 찾아봐야 하니까요. 아무래도 도로변보다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 오랜 삶의 흔적이 낡은 채로 남아 있는 남지 골목 /이서후 기자
지금 생각해보니 그 옛날 어머니와 남지에 와서 한 일이 아마 한약방에서 약을 짓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한의원이나 한약방 간판들이 예사로 보이지가 않네요. 어머니는 한의원이 아니라 유명한 한약방에 다녔습니다. 옛날 생각을 하다가 걷다 보니 한약방과 약국이 나란히 붙어 있는 곳이 있네요. 마치 남지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 같아 재밌네요.

골목 안으로 들어온 건 확실히 잘한 일 같습니다. 지난 삶의 풍경이 제법 남아 있습니다. 보행 보조기를 끌고 가만히 골목길을 지나시는 할머니, 좁은 골목에 기대어 있는 알루미늄 문틀과 그 너머로 보이는 양조장 간판도 보기 좋습니다. 오, 양조장은 나름 유명한 곳이로군요. 휴대전화로 살펴본 지도에는 남지탁주공동제조장이라고 돼 있네요. 슬쩍 내부를 보니 아주 오래된 양조장 같습니다. '남지 생 막걸리'가 주력 상품인가 봅니다.

▲ 시멘트 기와가 연둣빛으로 바랜 일본식 주택.
골목길을 계속 걸어봅니다. 새로 고친 집이라도 오랜 풍경의 원형을 남겨 둔 곳은 또 그런대로 운치가 있습니다. 저 멀리 일본식 주택 같은 게 보이네요. 시멘트 기와가 연둣빛으로 낡아 전체적으로 색감이 괜찮은 집입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빈집입니다. 하지만, 전체 모양새도 괜찮고, 내부도 제법 아기자기 합니다. 이런 집들을 잘 살리면 꽤 훌륭한 공간이 될 듯합니다. 남지에 누군가 그런 일을 할 분이 계신지 모르겠네요. 그 옆집은 2층 양옥인데 역시 빈집입니다. 2층까지 올라가서 주변 풍경을 살핍니다. 근처 어느 집 마당이 훤하게 보이네요. 마당이 소담하니 좋습니다. 이런 게 남지의 본 모습일까요.

골목 한편에서 개 한 마리가 끈질기게 짖어댑니다. 낮에 사람이 잘 없다가 인기척이 들리니 호기심이 생기겠지요. 이런 데 사는 개들은 으레 이렇게 심심한 비명을 지릅니다. 해석을 하자면 '누구냐, 심심해, 이리 와봐, 놀아줘'가 뒤섞인 울음입니다.

골목을 빠져나오는데 문득 가녀리고 높이 자란 덩굴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시멘트로 담벼락에 납작하게 붙여 만든 화분, 그 속에 얼마 안 되는 흙에서 안간힘으로 자라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식물의 이 끈질긴 생명력은 놀랍습니다. 언젠가 바람에 넘어진 나무를 본 적이 있는데요, 뿌리가 반 이상 뽑혀 나갔지만 땅에 드러누운 둥치에서 여전히 하늘을 향해 새로 가지를 내고 살아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현실에 맞춰 살아나가는 일도 위대한 일입니다. 이런 힘들이 모이면 현실 자체도 바꿀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남지 강변에 가보기로 합니다. 그 유명한 유채꽃밭이 만들어져 있는 곳입니다. 아직 유채꽃이 피기는 이르고요. 남지철교를 건너갔다 올 생각입니다.

가는 길에 드문드문 정겹게 낡은 간판이 있는 풍경을 만납니다. 그러다 한 식당 문에 적힌 글이 눈에 들어왔는데요. '들밥합니다'란 말입니다. 아마 새참을 말하는 거겠죠. 아니 새참보다는 든든한 한 끼 식사겠지요. 농사짓는 이들과 들밥을 먹어본 적이 있어 쉽게 이해가 되더군요. 그나저나 '들밥'이라니 이 얼마나 적절한 단어입니까. 좋은 말을 알게 되어서 즐겁네요.

유채밭에는 푸릇한 새싹이 돋아 있습니다. 한두 달이 지나면 노란 유채 물결을 볼 수 있을까요?

지나다니며 더러 봤던 남지철교는 참 예쁜 다리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만든 건데, 한국전쟁 때 중간 부분이 폭파되었다가 전쟁이 끝나고 다시 고쳤답니다. 원래는 도로의 일부인데, 지금은 차가 다닐 수 없게 해 놨습니다.

▲ 남지철교(푸른색)와 신남지교의 눈이 즐거운 색깔 대비 /이서후 기자
아, 다리가 두 개죠? 푸른색으로 칠한 게 근대 문화재로 지정된 남지철교고요. 그 옆에 주황색으로 칠한 게 신남지교라고 합니다. 두 다리 색깔 대비가 좋아서 눈이 즐겁습니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함안군 칠서면입니다. 칠서면에서 뒤를 돌아 남지읍을 바라봅니다. 트러스트 구조로 단단해 보이는 철교 두 개. 강을 건너려는 인간의 강한 의지 같은 모양입니다. 강인한 다리와는 달리 물에 비친 다리의 그림자는 물결을 따라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항상 흔들리는 건 물에 비친 그림자 같은 우리의 마음 아니었던가요? 인간의 마음처럼 불합리한 것도 없겠지 하며 가만히 다리 아래 유유한 물길을 바라보고 섰다가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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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