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지검 업무추진비 영수증 살펴봤더니
코로나 확산 시기 이상한 지출 다수 확인
마트서 기업 명의로 식자재 대거 사들여

지검장 주재 간담회 등 조리용품 잇단 결제
사적 유용 의혹...개인적으로 썼다면 배임
검찰 "규정 맞게 사용...더 이상 할 말 없다"

국민이 낸 세금인데도 단체·기관장 또는 공무원이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주머닛돈'. 업무추진비에는 여전히 이 같은 비판이 따라붙습니다. 지금처럼 자세한 사용 내역이 누리집에 공개되기까지 시민단체와 언론은 주먹구구식 집행을 지적하고 투명성을 요구했습니다. 창원지방검찰청 역시 '사전정보공표대상'으로 검사장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을 2010년부터 매달 누리집에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업무추진비를 식비 따위로 과도하게 지출하는 관행 탓에 업무와 관련돼 있는지 명확하지 않고,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한 창원지검 명세서와 영수증은 역시나 먹칠로 가린 부분이 많아 예산을 제대로 쓰는지 따져보기 어려웠습니다. 검찰 예산검증 공동취재단은 기록과 판별 작업을 거쳐 업무추진비 지출 행태를 살피고 부적정 의심 사례를 찾아냈습니다.

창원지방검찰청이 공개한 업무추진비 자료만으로 충분한 검증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상세 내용을 가린 채 날짜와 금액만 남긴 영수증은 지출 적정성을 확인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경남도민일보>는 창원지검이 특정시기, 특정 매장에서 지출한 업무추진비 상세 영수증을 입수했다. 이 영수증에는 지출결의명세서 내용과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지출 항목이 가득했다.

(위) 가 입수한 창원지검의 2020년 1~2월 창원지역 한 식자재 매장 결제 영수증. (아래) 검찰이 먹칠한 채 준 업무추진비 영수증. /최석환 기자
(위) 가 입수한 창원지검의 2020년 1~2월 창원지역 한 식자재 매장 결제 영수증. (아래) 검찰이 먹칠한 채 준 업무추진비 영수증. /최석환 기자

 

◇검사장 간담회 때 준비한 쌀 = 창원지검은 2020년 1월 13일 문홍성 검사장(제38대) 취임식 오찬 간담회에서 59만 4330원을 지출했다. 업무추진비 지출결의명세서에 적은 결제 금액은 56만 원이지만 첨부한 영수증에는 59만 4330원으로 나온다. 결제한 곳은 창원지역 한 마트이다.

따로 확보한 영수증을 보면 '가고파 고향 쌀'(20㎏·4만 9500원) 6포대가 눈에 띈다. 모두 29만 7000원으로 전체 결제액의 절반에 이른다. 이어지는 결제 항목도 식료품이다. △돼지 등심(4만 450원) △절단 코다리 3㎏(5만 6480원) △절단 명태 러시아산 3㎏(7만 620원) △파지 다시마 2.1㎏(1만 9500원) △동원 물엿 10㎏(1만 1800원) △청양고추(9900원) △오뚜기 골드마요네스 스파우트팩 3.2㎏(8280원) △오뚜기 카레 약간 매운맛 2㎏(9900원) △오뚜기 카레 순한맛 2㎏(9900원) △볶음용 멸치 2㎏(3만 9800원) △비엠푸드행사(식자재 행사상품·1만 4900원) △대천 재래 김 32봉(5800원) 등이다. 검사장 간담회와 도무지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지출 항목들이다.

◇간담회는 식료품·주방용품 구입하는 날? = 창원지검은 2월 3일 같은 마트에서 44만 9760원을 지출했다. 지출결의명세서에 적은 명목은 '검사장 주재 전입 검사 오찬 간담회'이다.

입수한 영수증에서 확인한 항목은 △가고파 고향 쌀 6포대(29만 7000원) △흙 대파 5입(8900원) △돼지 등심(3만 9520원) △청피망(8500원) △홍고추(5000원) △무염해파리 2㎏(1만 5000원)도 샀다. △동원 우동 건더기 스프 1㎏(2만 940원) △동원조이락실속맛살(6600원) △오뚜기 카레 약간 매운맛 2㎏(9700원) △오뚜기 카레 순한맛 2㎏(9900원) △애닭이 왕란(9700원) 등이다.

12일에도 같은 마트에서 55만 8220원을 지출했다. 지출결의명세서에 적은 명목은 '전출직원 오찬 간담회'로 돼 있다.

상세 지출 항목은 △가고파 고향 쌀 5포대(24만 2500원) △혼합 파프리카(2만 1000원) △홍고추(5000원) △청피망(1만 1900원) △볶음 통깨 1㎏(7330원) △고노리(다시용잡어) 3㎏(1만 9000원) △백설 남해굴소스 2.4㎏(8500원) △돼지 등심(3만 8510원) △오뚜기 식당용 케첩 스파우트팩 3.3㎏(3580원) △호박(5500원) △낙지 5.1㎏(5만 4360원) △낙지젓(1만 6500원) △부산진어묵(1만 6450원) △무염해파리 2㎏(1만 5000원) △그물 망사 수세미(4120원) △해표 카놀라유 900㎖(2980원) △주방용 세제 항균트리오 28㎏(2만 5000원) 등이다.

이어 19일에는 '청사 보안 담당 직원 간담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지출한 업무추진비는 21만 5610원이다. 추가 확보한 영수증을 보면 △세신행사(1만 7040원) △잘 풀리는 집 키친타올(9500원) △남선뉴디럭스숫돌(2만 840원) △별표 스텐레스수세미(8600원) △남선쥐포식도(1만 2680원) △오징어젓 4㎏(2만 9200원) △코다리 22.5㎏(11만 7750원) 등이 확인된다.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하면 창원지검은 2020년 특정 시기에 간담회 때마다 식료품과 주방용품을 대량으로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간담회 지출 항목이 다과나 음료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창원지검 간담회 지출은 확실히 튄다.

이에 대해 창원지검은 "규정과 예산편성 목적에 맞게 업무추진비를 쓰고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회원으로 등록해야 이용 가능한 마트 = 추가 입수한 영수증에는 검찰과 무관한 '대진테크'라는 상호가 나온다.

이 매장 관계자는 "사업자등록을 한 업체가 회원으로 가입해야 이용할 수 있다"며 "일단 가입하면 회원 번호로 업체 대표나 직원, 가족 지인 등이 거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 대로면 창원지검이 대진테크 회원번호를 이용해 식자재 매장에서 업무추진비를 지출한 게 된다.

'대진테크'로 검색되는 업체는 창원을 비롯해 진주·김해·거제·부산 등 경남·부산지역에 10곳 정도 나온다. 이 가운데 창원에 있는 대진테크에 거래 여부를 확인했다.

이 업체 대표는 "회원가입은 돼 있으나 이용자가 제한돼 있어 도용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나중에 다시 확인한 회원번호도 달랐다. 다른 지역에 있는 대진테크에도 추가 확인했으나 의미 있는 답을 얻지 못했다.

일반적인 간담회 범주에서 벗어난 지출 항목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 특히 해당 간담회는 코로나 확산 여파로 모임 자체가 어려운 시기에 열렸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사실상 지검장이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유용해서 식료품 구매비에 쓴 것처럼 보인다"며 "개인적으로 쓴 것이라면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권재관 기획재정부 예산기준과장은 "기관마다 자체 지침을 통해 사용 목적 등이 세부적으로 정해진다"며 "지침을 어겼다고 해서 벌금을 내거나 징벌 조항은 없지만, 위반한 사실이 있다면 그 정도에 따라 적절한 처분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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