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에 다뤄야 할 의제] (8) 성평등

여성 일자리 양과 질 모두 잡아야
"인식 변화 없이 여성 대상 범죄 개선 어렵다"
차별금지법·생활동반자법...혐오에 가로막혀
"총선 후보들 여성 유권자 목소리 듣기를"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총선에서 여성 정책이 실종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집행한 예산과 정책에서도 ‘여성’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치인이 ‘여성’을 말하면 ‘역차별’이 뒤따라오는 상황이다. 정치인들이 젠더 갈등에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지역소멸을 겪는 경남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경남지역에서 여성 인구 유출은 남성 인구 유출보다 가파르다. 남아있는 여성들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에 있거나, 더는 바뀌지 않는 현실에 목소리를 내기를 꺼리고 있다. 여성의 목소리가 국회까지 가닿을 수 있을까.

경남지역 25개 여성시민사회단체가 지난 1일 경남도청 앞에서 ‘여성 주권자 경남행동 어퍼(UPPER)’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최환석 기자
경남지역 25개 여성시민사회단체가 지난 1일 경남도청 앞에서 ‘여성 주권자 경남행동 어퍼(UPPER)’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최환석 기자

◇선결 과제는 여성 일자리 = 당장 여성 인구 유출을 막으려면 일자리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경남도 자료를 보면 여성 고용률은 2019년 50.5%에서 지난해 10월 54.2%까지 증가했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도 2019년 52.5%에서 지난해 10월 55.6%까지 늘었다. 반면 여성 실업률은 2019년 3.7%였으나 지난해 10월 2.4%까지 감소했다.

여성의 경제활동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를 보면 점차 상황이 좋아지는 추세다. 전국 평균과 비슷한 수치를 보였으나 여성 인구 유출을 막으려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경남의 주력산업은 제조업이다. 남성 일자리가 많으며, 상대적으로 여성 종사자 비율이 높은 서비스업 등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보배 경남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일자리의 양을 늘리면서도 질을 높이지 않으면 획기적인 변화는 오지 않는다”며 “제조업 안에서 성별임금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성 노동자가 남성 노동자보다 대우가 부족한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경남에서 일하면서 얻는 교육 경험이 서울이나 수도권보다 부족하다는 인식도 있다”며 “저숙련 단순직에 종사하는 여성 비율이 높은 만큼 앞으로 디지털 기술 전환 교육을 받지 않게 된다면 향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혐오를 넘어서 = 지난해 11월 진주 한 편의점에서 20대 여성이 “머리카락이 짧다”, “페미니스트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20대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같은 해 7월에는 함안군에서 여성 마을 이장이 이웃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갑자기 끌어안거나 동의 없이 집에 찾아오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했고 피해자가 이를 받아주지 않자 흉기로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강력범죄 여성 피해 사례는 2007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는 양상을 보인다. 2017년 이후 하락세를 보이다 2021년부터 다시 늘었다. 지난해 신현영(더불어민주당·비례) 국회의원이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를 확인한 결과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발생한 흉악 강력범죄 피해자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여성이었다.

일상이 불안한 여성들의 고충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김유순 경남여성인권상담소장은 폭력 피해자들을 가까이서 지켜본다. 그는 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안전장치를 받더라도 다시 범죄에 노출되거나, 가정폭력 피해자가 자립지원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을 목격했다.

김 소장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인식 변화 없이는 개선되기 어렵다”며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게 하려면 사회 전반에 깔린 혐오를 없애고 가장 기본적인 인권 존중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이유로든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과 친인척이거나 혼인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될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도 혐오가 걸림돌이 됐다. 두 법안이 제정된다면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의 권익을 신장할 수 있다. 차별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고, 관계나 역할에 구애받지 않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2024 총선시민네트워크는 21대 국회에서 반인권적인 발언을 하고 혐오 표현을 한 정치인의 국회의원 재출마를 반대했다. 시민단체는 차별금지법과 생활동반자법 공약을 총선에서 내걸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 반응은 시원찮다. 국민의힘은 두 법안에 강경한 반대 입장을 펼치고 있다. 진보당과 새진보연합 일부 의원은 세부적인 내용에 차이는 있으나 두 법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으며, 녹색정의당은 총선 공약으로 앞세웠다. 소수정당의 국회 진출이 아니라면 두 법안은 입법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주권자 되려는 여성들 = 경남지역 25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일 ‘여성 주권자 경남행동 어퍼(UPPER)’를 출범했다. 여성 주권자 경남행동 어퍼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으고자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총선에서 성평등 민주주의를 실현할 방안을 고심하면서 정책 제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대통령선거 때부터 정치는 혐오와 차별의 언어로 여성을 정치와 정책에서 지웠다”며 “페미니즘 왜곡, 구조적 성차별 부인, 여성가족부 폐지 공언 등으로 성평등 추진 체계와 정책 퇴행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총선 후보들이 여성 유권자의 목소리에 얼마나 잘 듣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지금은 중앙당에서 나온 공약을 전달하는 데 그치고 있다. 오히려 정치권이 우리에게 여성 현안이나 대응 자료를 달라고 한다. 선거 때마다 여성단체에서 공약 제안을 하더라도 선거가 끝나고 보면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우리도 힘이 빠진다.”

윤소영 경남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총선 공약을 제시하더라도 결과물이 너무 없는 것을 보면 우리가 하는 게 맞는지 회의감이 느껴진다”며 “일부 정치인들은 여성 공약을 내세우는 것을 꺼리기까지 한다”고 토로했다.

/김다솜 기자

 

 

관련기사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