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에 다뤄야 할 의제] (10) 지역 문화예술 사막화
지역서점 지원 예산 전액 삭감
문화예술교육도 금액·시간 줄어
석역찮은 정부 지역문화정책관 예산
청와대 예술공간화에 예산 증액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지역 문화예술계는 마르는 예산을 보고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전체 예산은 지난해보다 늘었다고 하지만 2022년 7조 원과 비교하면 올해 예산은 8000억 원가량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문화예술인과 기획자들은 지역 곳곳에 문화예술이 가닿지 못하게 되는 걸 걱정한다. 애초에도 허술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지원 체계였다. 여기에 지원이 점점 나아지기는커녕 줄어든 예산으로 운용하려니 예산 나누기 싸움만 부추기는 꼴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 소소한 문화 모임 사라질 위기 = 지난해 9월 문체부 2024년 예산안 중 지역서점 활성화 및 지원 예산 11억 원이 전액 삭감돼 반발을 샀다. 문체부는 이를 '디지털 도서 물류 지원' 예산으로 변경했고, 예산도 15억 원대로 늘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장 전국 동네책방 등에서 활발히 진행하던 750여 개 문화 프로그램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경남도 역시 2022년 '지역 서점 및 출판문화 활성화'에 1억 원의 예산을 들였는데 지난해에 8000만 원으로 축소한 걸 올해도 이어 오고 있다.

요즘 동네책방이라 불리는 지역 서점은 책만 파는 곳이 아니다. 책 읽기, 글쓰기 등 소소한 모임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며 지역 문화 공간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실 이런 책방들은 그 자체로 생계수단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과 함께 좋은 책을 읽고 싶다는 책방 대표의 자발적인 선의로 운영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런 책방 대표들이 동력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 

2018년 남해로 귀촌해 삼동면 지족마을에서 동네책방 아마도책방을 운영 중인 박수진 대표는 정부와 지자체가 하는 문화예술 지원 체계가 지속성이 없음을 꼬집었다. 박 대표는 "초기 자본 없이 책방을 열었기에 책방 이름을 알리는 데 국고보조금이나 공모사업을 지원해 모임이나 강연 같은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 많다"며 "하지만, 지금 지원 체계는 기획자 즉 서점 주에게 1년 동안 겨우 50만 원 정도 인건비가 지급되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마저도 지급하지 않는 사업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까지 축소된다면 그나마 하던 기존 사업도 사라질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진주 문산읍에 있는 동네책방 보틀북스 채도운 대표는 지역 격차를 걱정했다. 채 대표는 "지금도 서울과 문화 격차가 큰데 동네서점에서 하는 좋은 강의마저 사라진다면 지역 문화 소멸이 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 대표는 이에 대한 방안으로 '상생'을 들었는데 경남도교육청 소속 도서관이 책을 구매할 때 대형 소매업체보다 동네서점에서 정가로 사는 방법 등이 있다고 제시했다.

지난해 5월 창원 오누이북앤샵에서 열린 독서모임. /오누이북앤샵
지난해 5월 창원 오누이북앤샵에서 열린 독서모임. /오누이북앤샵
지난해 9월 진주 문산읍 동네책방 보틀북스에서 열린 이도우 작가 북토크. /보틀북스 
지난해 9월 진주 문산읍 동네책방 보틀북스에서 열린 이도우 작가 북토크. /보틀북스 
지난해 9월 남해 두모마을에서 동네책방 아마도책방이 진행한 남쪽바다 책잔치. /이서후 기자 
지난해 9월 남해 두모마을에서 동네책방 아마도책방이 진행한 남쪽바다 책잔치. /이서후 기자 

◇점점 커지는 예술가 생계 위기 = 문화예술교육 분야에도 제동이 걸렸다. 문화예술교육이란 전문 예술인으로 성장시키는 교육이 아닌 문화예술을 이용해 시각을 확대하는 교육이라 이해하면 된다. 이런 교육에 교육자로 참여하는 연극, 영화, 미술, 공예, 국악 등 여러 분야 예술인을 예술강사라 한다. 이는 예술인들이 작가로서 본업을 잃지 않으면서 경제 활동을 이어갈 수단이자 작은 지역 초·중·고 학생들에게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늘리는 사업이다.

예술강사 시급은 15년째 4만 원을 유지하다 최근 4만 3000원으로 올랐다. 이마저도 교육을 준비하는 데 들이는 시간, 이동 시간 등은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 예산이 줄면서 이제는 수입 자체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창원에 사는 박성국(42) 예술강사는 영화를 활용해 교육한다. 광고, 뮤직비디오,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교육 과정을 꾸려 합천에 있는 학교로 갔다. 교통비 지원이 없는데도 굳이 창원에서 합천으로 간 이유는 창원 지역 다른 예술강사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올해 예산이 줄자, 학교 측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신청하지 않게 됐다. 그러자 박 강사 수업 시간이 연간 400시간에서 60시간으로 줄었다. 결국 박 강사는 교통비라도 아끼려면 이제 창원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

실제 문체부 문화예술교육 지원 예산은 지난해 1212억 9000만 원에서 올해 889억 1500만 원으로 323억 7500만 원 줄었다. 이에 따라 지역에 교부되는 금액도 줄었는데, 경남도 학교예술강사 지원 예산액은 지난해 9억 326만 원에서 올해 4억 5170만 원으로 책정돼, 4억 5155만 원이 줄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예술 교육 시간이 줄어든다. 2023년에 10만 3438시간이었는데, 올해는 5만 8225시간이다. 전년 대비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예술강사 1명당 수업 시간도 최대 476시간이던 게 이제 250시간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남지부는 경남도교육청에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 예산 증액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도교육청에 추가경정예산으로 예산 복구를 요구했지만, 기존의 10% 정도 증액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온 상태다.

지역 문화예술 예산 감소로 문화 활동이 주춤하는 상황에서 최근 문체부가 석연치 않은 지역문화정책 예산 운용으로 논란을 빚었다. 문체부 지역문화정책관은 지역문화 자생력을 높이고 생활문화를 누리는 환경을 만들고, 지역과 일상 속 문화기반시설 활성화와 지역문화 기반을 강화하는 정책을 꾸린다. 최근 지역문화정책관 예산 중 눈에 띄는 증액이 있다. 청와대 복합문화예술공간 구축 사업이다. 올해 이 사업 예산은 300억 2400만 원으로 지난해 235억 1200만 원보다 65억 1200만 원 늘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하겠다고 했는데, 여기에 지역문화 활성화 예산을 쓴 것이다. 

/주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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