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에 다뤄야 할 의제] (8)관철해야 할 노동입법

윤석열 정부 강압적인 노동자 탄압 우려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연장 시도 등 비판
노란봉투법은 거부권 행사로 법 제정 막아

중대재해 발생해도 처벌받는 책임자 극소수
기업들, 노동자 옥죄는 손해배상 소송 불사
"노동 의제 실종...후보들 지향 가치 밝혀야"

해마다 일하다 죽는 노동자들만 2000명이 넘는다. 대통령이 바뀌고 국회의원이 새로 뽑혀도 이 숫자는 변하지 않는다. 이 같은 현실은 노동자들을 가로·세로·높이 1m 남짓한 쇠 감옥에 밀어 넣고 수십 미터 높이 타워크레인 위로 내몬다. 노동자들의 목숨 건 투쟁에도 윤석열 정부는 초지일관 노동조합 혐오, 노동자 탄압을 밀어붙이고 있다.

노동자들 피로 만들어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비극적인 현실을 뒤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자는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은 아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법 적용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보장’은 이번 총선에서도 중요한 의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년…경영 책임자 처벌 소극적 = 지난해 12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2022년 산업재해 현황분석’을 보면 2022년 한 해에만 2223명이 일하다 사망했다. 지난해 경남에서도 52명이 일터에서 숨졌다.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외침은 아직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2021년 1월 26일 제정되고 2022년 1월 27일 시행됐지만 제대로 경영자를 처벌한 사례는 징역 1년이 선고된 한국제강뿐이다. 이마저도 과거 여러 차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자 13명이 발암물질에 노출됐던 김해 대흥알엔티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조차 안 됐다.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했다는 형식적인 이유에서였다.

김유기 전 금속노조 대흥알엔티지회장은 “사측에서는 안전 의무를 다했다고 하는데, 형식적일 뿐 현장에서는 안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며 “이런 식이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받는 사업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지난해 12월 4일 오전 서울 대법원 앞에서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 관련 대법원의 책임 있는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호소문을 읽고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지난해 12월 4일 오전 서울 대법원 앞에서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 관련 대법원의 책임 있는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호소문을 읽고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해도 강력한 처벌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제강 사건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징역 1~2년에 집행유예 2~3년에 그치는 현실이다.

대흥알앤티 피해자들을 대리한 김태형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도입한 이유가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제대로 된 처벌이 안 되고 산업재해 예방이 잘 안 됐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지금 검찰 구형이나 법원 선고를 보면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고 사안 중대성 인지를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영국 변호사(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안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분명히 있는데도 검찰과 법원은 무조건 최저형에 맞춰서 구형과 판결을 한다”며 “상황이 이러다 보니 경영책임자들은 안전 강화에 비용을 투자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법망을 빠져나갈지에 더 큰 비용을 쏟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달 27일부로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는 만큼 관련 대비를 충분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시킬 목적으로 지난 3년간 아무 준비를 안 했다”며 “당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확대로 관련 업무가 늘어날 텐데 고용노동부에서 이를 맡을 인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입법 논의 재추진될까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9년 전 첫 법안이 발의되고 어렵사리 지난해 11월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했지만, 대통령 거부권으로 끝내 법 제정에는 실패했다.

노란봉투법 핵심은 사용자의 손해배상·가압류 남용을 막고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 사용자 정의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데 있다.

정부는 노란봉투법을 두고 불법파업을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사용자 측 법적 책임은 강화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24일 서울고법 행정6-3부는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 CJ대한통운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을 유지했다.

이 판결에서 재판부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했다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도 원청이 하청노동자가 제공하는 노동으로 이익을 본다면 원청은 하청 노동자 단첩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결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논의가 중단된 노란봉투법 재추진 불씨를 댕길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손해배상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022년 여름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들은 51일간 점거 파업을 벌였다. 원청의 대화 회피와 파업 방해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사측은 하청노동자 5명에게 470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파업 노동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그 자체로도 여러 문제가 있지만, 노동자 개인 삶을 파괴한다는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2003년 창원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배달호 열사가 분신했고 같은 해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김주익 열사가, 2012년에는 최강서 열사가 사측의 손해배상 폭탄에 생을 마감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소송대리인단 소속 최경아 변호사는 “사용자 측은 기존 노조법을 악용해 노조 와해나 노노갈등 유도해 왔다”면서 “원청이 하청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이윤을 얻고 있는데도 원청에서는 직접 고용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변호사는 총선을 앞두고 관련 논의 자체가 사라진 점을 지적했다.

그는 “지금 총선과 관련된 뉴스만 봐도 모두 공천과 관련된 선거 공학적인 이야기가 대다수”라며 “노란봉투법을 비롯해 중대재해처벌법 등 노동 의제는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고 후보들도 본인의 가치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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