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후보 정책 답변 분석] (9) 쌀값 대책·양곡관리법 개정

헌법에 농업 보호·육성, 농산물 가격 안정화가 명시돼 있다. 농민을 나라 근간으로 보는 개념이 녹아 있는 셈인데, 현실은 다르다. 물가 인상을 못 따라가는 쌀 가격, 높아져만 가는 생산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2년에는 쌀값이 45년 만에 최대로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고 나락 적재 시위에 나선 건 그동안 쌓인 분노가 임계점을 넘은 까닭이다.

정치권이 뒤늦게 미련한 대책은 쌀값이 기준 이상 내릴 때 의무격리 방안을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농정 문제가 부각됐지만, 농민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역사에 남았다. 대통령이 임기 최초로 국회에서 의결한 법안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다시 발의된 수정안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될 전망이다. 결국, 22대 국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소속 농민들이 2022년 9월 15일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 들판에서 쌀값 폭락과 농업 생산비 폭등에 항의하며 볏논을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경남도민일보DB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소속 농민들이 2022년 9월 15일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 들판에서 쌀값 폭락과 농업 생산비 폭등에 항의하며 볏논을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경남도민일보DB

◇‘시장경제 훼손’-‘식량안보’ 관점 부딪쳐 = 여야 국회의원 선거 후보들이 양곡관리법을 보는 시각은 대체로 명확히 갈린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개정안 발의를 주도했고, 국민의힘은 끝까지 반대하는 등 당론이 명확해서다.

국민의힘 후보들이 양곡관리법 개정을 반대하는 명분은 ‘시장 기능 훼손’과 ‘재정 부담’이다. 윤영석 양산 갑 후보는 “폐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우리 쌀 산업 시장 경제 원리를 교란할 우려가 있다”며 “무제한 쌀 수매가 이뤄지면 막대한 재정 소요가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법안 심의·의결 과정에서 쌀 의무격리 요건이 완화(초과생산량 3% → 3~5%, 평년 가격 대비 5% 이상 하락 → 5~8% 이상 하락)됐지만, 국민의힘은 ‘의무 매입’ 자체를 독소 조항으로 봤다. 대신 내세우는 대안은 국내외 수요 창출, 스마트농업화, 유통 구조 개선 등 시장적 해결책이다.

반면, 민주당 후보들은 양곡관리법 개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강조하는 가치는 ‘식량 안보’와 ‘식량 주권’이다. 이재영 양산 갑 후보는 “안보에는 자국 식량을 책임지는 식량안보도 포함된다”며 “국가 양곡 관리로 농가가 상승한 물가에 대응할 수 있어야 다음 해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밝혔다. 쌀을 비롯한 생필품 가격을 온전히 시장경제에만 맡길 수 없다는 이야기다.

야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쌀 시장격리 의무 조항을 넣은 데는 논리가 있다. 현행법상 시장격리 조치가 임의 조항이라 쌀값 지지라는 제도 취지를 못 살린다고 봐서다. 2년 전 쌀값 폭락도 정부가 과잉 생산에도 격리를 망설이다 불러온 사태였다. 가격 하락 때 매입은 선택이지만, 상승 때 공공비축미 출하는 의무사항이라 ‘시장 실패’ 여파를 농민만 뒤집어쓴다는 문제도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소속 농민들이 2022년 5월 15일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 들판에서 열린 쌀값 폭락과 농업 생산비 폭등 항의 논 갈아 엎기 및 경남농민 투쟁 선포대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DB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소속 농민들이 2022년 5월 15일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 들판에서 열린 쌀값 폭락과 농업 생산비 폭등 항의 논 갈아 엎기 및 경남농민 투쟁 선포대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DB

◇사전수급관리 필요성 공감대 = 의무격리 조항 외 다른 답변을 뜯어보면 접점도 보인다. 예를 들면, 쌀 사전수급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당과 관계없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종욱 국민의힘 창원 진해 후보는 “‘사후적 시장격리 대책’이 아니라 ‘선제적 쌀 수급관리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며 “전략작물직불제를 확대해 구조적 공급과잉 상황에 놓인 벼 재배면적을 사전 감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같은 당 최형두 창원 마산합포 후보, 조해진 김해 을 후보, 신성범 산청·함양·거창·합천 후보 등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전략작물직불제는 지난해 시행된 제도로 밀·보리·가루쌀 등을 논에 재배하면 직불금을 주는 제도다. 쌀 재배면적을 조금씩 줄여나가겠다는 포석으로, 2018~2020년 사이 한시적으로 시행됐던 ‘타작물재배지원사업’과 맥락이 같다. 민주당 발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타작물재배지원사업을 법제화하고 예산 지원 근거를 만드는 내용도 포함됐는데 의무격리 조항만 논란이 되면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민주당 소속 한경호 진주 을 후보, 허성무 창원 성산 후보, 이옥선 창원 마산합포 후보 등은 양곡관리법 재추진 사유로 ‘타작물재배지원 재개’를 꼽았다.

의무격리 문제에서 한발 물러서되, 생산수급관리 대책에서 접점을 만들겠다는 후보도 있다. 김기태 민주당 산청·함양·거창·합천 후보는 식량작물(쌀·곡물·구황작물) 재배면적 제한과 지원 규정 도입, 농민·소비자·정부·국회가 참여하는 ‘농산물 공급 및 가격관리위원회’(격리 기준 심의) 신설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민주당이 올해 2월 발의했으나 폐기를 앞둔 새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기반을 둔 내용이다.

박상웅 국민의힘 밀양·의령·함안·창녕 후보는 당론과 달리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만들고 싶은 법안 1호로 꼽았다. 단, 민주당 안처럼 의무격리하는 게 아니라 쌀농사 면적 축소 방안, 주곡산업 전략물자 관리 제한선 설정 등을 강조했다.

◇공정가격 격리, 최저가격 보장도 = 정혜경(전 진보당 창원의창 후보)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는 더 급진적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답변했다. 공공비축미 물량을 100만t 이상 확보하고, 쌀 자급률 100%를 명문화하는 방향이다. 진보당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시장 격리 시 쌀 생산비를 보전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공정가격’으로 사들여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제윤경 민주당 사천·남해·하동 후보도 “기초 농산물 최저가격을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고, 같은 당 황기철 창원 진해 후보도 “주요 농산물 적정 기준 가격을 설정하고 그 아래로 떨어지면 차액의 일정 비율을 보전해주는 농산물 가격안정제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민주당 후보들이 말하는 최저가격 혹은 기준가격 도입은 농민 소득지지 차원에서 시행되다 2020년 폐지된 변동직불제와 흡사하다. 현재 밭작물에만 적용되는데,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쌀을 비롯한 양곡에 확대하자는 내용이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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